일본은 달성에서 아시아 점령 꿈을 키웠다
일본은 달성에서 아시아 점령 꿈을 키웠다
  • 이대영
  • 승인 2019.04.10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 무혈 입성
청일전쟁 때 주요 요충지 삼고
이후 승전기념공원으로 지정
日에게 있어 달성은 길지이자
대륙병참기지의 최적지인 셈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신이 점지하고 축복하는 언덕
신택리지-대구신사
대구신사가 있던 대구달성공원. 이대영 소장이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대구신사 참배기념사진과 스탬프를 기준으로 스케치했다.

 

 

이대영의 신 대구 택리지 (15)하늘의 모든 것이 비치는 거대한 거울(天照大鏡)

거대한 달구벌호수는 동트는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비췄다.

달구벌에 우글거리던 공룡은 물론 주변 산기슭의 동물들도 호수주변에서 물을 마시고 새벽이 열리는 모습을 신비스럽게 지켜봤다.

그리스신화에서 나르시스(Narcissus)가 자신의 얼굴을 물웅덩이(mirror)에 비춰보듯이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자 인간은 달구벌 하늘이 비치는 거대한 거울(天照大鏡)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삼한시대에서 신라 중기까지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신시(朝市)를 열었다.

이곳에 살았던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갈한 그릇으로 이른 새벽 첫 길은 우물물(井華水)을 떠놓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면서 가정의 평온을 빌었다. 정화수 한 그릇으로 하늘의 뜻을 헤아리려고 달구벌호수를 축소해서 정갈하게 담았다.

한편 BC 13세기경 로마의 카피톨리노(Capitolino) 언덕에 깃발을 꽂으면서 로마제국건설을 선언했던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 쌍둥이 형제가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신화가 있다. 이탈리아 말로 늑대란 루포(lupo)다. 사실 감추고 있는 다른 뜻은 창녀(lupe)다. 영웅적인 신비감을 더하고자 창녀양모의 치욕감을 감추고자 늑대신화를 만들었다.

BC 667년 둘째 아들로 태어나 국왕이 될 수 없었던 비자스 왕자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자 하는 야욕으로 아폴론신전 여사제(女司祭)에게 신탁을 구했다. ‘눈 먼 자의 도시 반대편에 새로운 도시를 세워라’라는 신탁(神託)을 받았다. 그는 장님 칼케돈의 땅 건너편에 이스탄불(Istanbul)을 찾아 수도를 건설했으며, 이곳은 나중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상을 종합하면, 세계대제국의 도읍지 신화나 전설을 넘어서는 i)‘신이 만든 언덕에 펼쳐진 축복받은 땅(神皐福地)’, ii)‘하늘의 뜻이 비춰지는 거대한 거울(天照大鏡)’, iii)‘닭이 울어 한반도의 새벽을 여는 곳(鷄鳴天開)’ 그리고 vi)‘구미호가 살았던 올망졸망한 푸른 언덕(靑丘美狐)’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 바로 달구벌이다.

◇달구벌의 연꽃에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니?

한반도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에 위치하고 있고, 신라는 한반도의 극동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륙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늦었다.

AD 630년대 저술된 중국고서 양서(梁書)의 기록을 보면 신라는 ‘통용되는 문자를 갖지 못해서 백성들은 나무를 깎아서 소식을 나누는 편지를 만들었다(無文字而, 刻木爲信)’고 적고 있다. 시골 어릴 때 고택 사랑채에 색실로 묶여있던 나뭇가지 편지가 회상된다. 당시는 오늘처럼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농경사회라서 소식이란 건강, 평온, 질환, 사고 및 죽음이 주요관심사였다. 건강, 평온, 무사태평 등은 매끈하게 모서리를 깎았고(─), 각종질환 혹은 건강악화 등은 역삼각형(▽)으로, 낙상사고(落傷事故) 등의 각종사고는 사각형(□)으로, 죽음은 땅을 파서 산에 무덤을 만든다고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가령 친척으로부터 받은 나뭇가지편지의 모서리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면, 인생경험이 많은 분은 “가정이 평온했는데 아픈 환자가 생겼으나 나아서 평온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유고도 있었으나 극복하고 건강했는데 끝내 세상을 떠났다”라는 해석을 한다. 한 개의 나뭇가지에다가 4개 모서리로 깎는다면 4명의 가족안부까지도 전달이 가능했던 목각신(木刻信)이었다.

◇일본몽(Japan Dream)을 성취할 신이 점지한 길지(神皐福地), 달성

일본의 한반도(아시아대륙) 정벌야욕은 신라시대부터 시작했다.

기록으로는 AD 391년 신묘년(辛卯年)의 임나정벌(任羅征伐)이란 전설을 빌미로 고베(神戶)에다가 정벌기념 이구다진자(いくたじんざ,生田神社)를 건립했다. 또한 1883년 일본육군참모본부 사코우 가케아키(酒句景信, 1850~1891)는 광개토왕의 비문을 탁본하여 갖고 가서, 1913년 현지조사 및 1935년에 관동군을 통해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조작하는 차시환혼작전(借屍還魂作戰)을 감행했다.

AD 752년 경덕왕(景德王)의 왕자를 사칭해서 일본을 농락했던 김태렴(金泰廉)사건을 보복하겠다고 후지와리 나라가마(藤原仲麻呂)는 ‘정벌신라(將伐新羅)’라는 신라정벌 10개년 프로젝트를 수립해서 추진했으나, 결국은 후방협공을 할 발해(渤海)의 비협조로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의 대륙침략 야욕은 다시 살아나,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는 중국조선정복구상(支那征服構想)을 했으나 죽음으로 끝났다. 유지를 이어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 1537~1598)는 당국평정구상(唐國平定構想)으로 1585년 외정계획(外征計劃)을 수립했고, 1591년 1월 20일에 원정준비를 완료했다. 1592년 4월 초하루에 분로크노에키(文祿の役)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1592년 4월12일에 부산항에 도착하자, 4월15일 대구읍성 성주 부사(尹晛)는 대구읍성을 비우고, 경상좌병사 이각(李珏)의 지시로 울산좌병영을 향해 출병했다.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의 진격부대는 이미 4월 20일 무주공성에 무혈 입성했다. 4월 22일에 인동성(仁同城)을 점령하고 문경조령(聞慶鳥嶺)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구부사가 4월24일에야 대구로 들어왔을 때는 대구는 이미 난공불락의 왜군 치하였다.

1894년 6월 1일 동학농민군이 전주성(全州城)을 점령하자 조선조정에서 반란군 진압을 위해 청국군대(淸國軍隊)에 지원요청하자, 6월 8일 일제는 조선 조정에 강력히 항의함과 동시 일본군 4천500명을 인천에 상륙시켰다. 조선에서 청국 군사력 제어를 위해 6월 22일 대구달성토성을 야영지로 2천여 명의 전투력을 후방에 배치시켰다.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전쟁참여 병력은 청나라의 5분의 1정도였다. 청나라 전사자 1천200여 명에 비해 일본군은 78명으로 일본군의 대승이었다. 이를 계기로 ‘적은 병력으로도 강대국을 이긴다(以小勝大)’의 불패신화(不敗神話)를 만들었고 러일전쟁에서,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1905년 대구달성을 청일전쟁 승전기념공원으로 지정하고, 일본제국의 꿈을 성취할 터전으로 달성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대구 달성의 성역화구상(聖域化構想)이 시작된 것은 첫째 i) 지덕(地德)으로 봐서 조선정벌 프로젝트(文祿の役) 당시 유일하게 성문을 열어놓고 성주조차 없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들어오도록 환영한 곳은 조선천지 이곳 大邱 뿐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일전쟁의 승리를 안겨다 주었던 길지(吉地)였다. ii) 군사· 교통상 전략적 요충지로서 일본인의 꿈인 지나정복(支那征服,Conquest of China)의 대륙병참기지로 최적지였다. iii) 또한 실제로 카토리신궁의 동경(銅鏡)이 국보인 것처럼 ‘하늘이 비치는 거대한 거울(天照大鏡)’이라는 전설은 일본건국의 아마테라스 오오카미(天照大神)가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신통비기(神通秘器)로 맞아떨어졌다. 마지막으로 iv) 동양인이 신봉하던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달구벌이란 거대한 호수 위에 떠있는 연잎모양인 달성공원이고, 그 가운데 연꽃이 피는 곳에 황태신궁(皇太神宮,こうたいじんぐう)을 건설한다는 것은 ‘신이 점지하고 축복하는 언덕(神皐福地)’이 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