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의 추억
맞선의 추억
  • 승인 2019.04.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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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결혼정보 대표
교육학 박사
오래전의 일이다.

중매를 직업으로 하는 나를 위해 이웃이나 지인들은 자기 주변의 처녀 총각의 사연들을 내게 전해주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노처녀 노총각들의 사연이 단연 많다.

그날도 오래된 모임에서 한 지인이 자신의 직장에 골드미스가 있는데 여러 가지 조건이 꽤 괜찮은데 아직 짝을 못 만났다고 얘기를 꺼냈다. 그날의 주제가 결혼생활과 관련되어서인지 주변의 선남선녀들이 강제로 소환되는 판이었다. 그러자 다른 지인이 남편의 직장에 노총각이 있는데 비혼주의자도 아닌데 결혼 성사가 안 돼 안타깝다는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둘이 딱 맞네.” 하면서 단체로 중매에 나섰다.

처녀는 지역의 유수 언론사에 근무하는 전문직 여성이고 나이는 마흔한 살이었다. 총각은 행정고시를 패스한 공무원인데 마흔다섯 살이었다. 단체로 또 “나이도 딱 맞네!”를 외쳤다.

오지랖이라면 세계에서 둘째가면 서러운 우리네 아줌마들의 힘으로 일사천리로 맞선이 성사되었다.

두 사람의 미팅이 몇 번 진행되는 동안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나이도 찰 만큼 찼고, 집안에서도 어떻게든 성사를 시키려고 회유와 압박이 보통이 아닌데 막상 당사자들의 분위기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했다. 물이 끓으려면 불을 때야 하고 불을 때면 당연히 물이 끓어야 하는데 불을 아무리 때도 물이 끓기는커녕 솥뚜껑 사이로 김만 푹푹 샐 뿐 끓어오르지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거부하고 만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간혹 만나기는 하는데 자꾸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아까운 시간만 자꾸 가고 있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나이도 많고 각자가 사회에서 묵직한 역할을 잘 해내는 성숙한 사람들이라 어지간하면 본인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으려고 했는데 답답해서 죽을 판이었다. 처녀 총각을 따로 만나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골드미스인 처녀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여성답게 자신의 주관도 뚜렷하고 또박또박한 말솜씨며 행동거지가 당찼다. 총각이 맘에 들지 않느냐고 하자 그렇지는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는 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정을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느냐고 물으니 ‘나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네 살 차이면 더 볼 것도 없는 나인데 하니까 자신도 이미 나이가 많은데 남자가 네 살이나 많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과 동갑이나 연하여야 아기도 낳아 키우기 알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마음에 드는데 나이가 딱 걸려서 결정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근래에 본 맞선 때마다 조건은 다 좋은데 나이가 마음에 걸려 다 퇴짜를 놨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연하인 경우는 잘 없던 때라 말문이 턱 막혔다.

총각은 행정고시를 패스한 수재답게 지성적이고 유쾌한 남성이었다. 아가씨에 대해 물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결정을 미루고 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총각은 ‘나이’라고 말한다. 마음에는 드는데 나이가 걸린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백번도 넘게 선을 봤는데 마흔한 살 처녀와 결혼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네 살이나 아래인데 하니까 지난 봄에 본 처녀는 서른 두 살이었고, 불과 몇 달 전에 본 처녀는 서른다섯이었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서른 살 아가씨와도 선을 보았다고 하면서 백번도 넘게 본 맞선의 추억을 소설처럼 쏟아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결혼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든 둘을 맺어주고 싶어서 동분서주 했던 시간이 허무했다. 결혼도 타이밍이다. 결정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이런 희극적인 상황도 벌어지는 것이다. 지나간 맞선의 추억을 가진 채 현실을 외면하면 추억이 현실인지 현실이 추억인지 분간이 안되는 혼돈 상태가 되는 것이다.

모임 때면 간혹 이 두 처녀 총각의 근황을 듣게 된다. 두 사람 다 아직 혼자라고 한다. 이제 결혼은 포기하고 싱글로 살아간다고 한다. 싱글이 좋으냐 커플이 좋으냐 이런 원초적 문제는 아닐 것이다. 팔자소관도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 후회 없이 살다 가면 그뿐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선택을 할 기회가 수없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길을 가는 두 남녀의 앞날에 행복의 파랑새가 함께 해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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