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首丘初心)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首丘初心)
  • 승인 2019.04.11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
얼마 전 올해 처음으로 대구반야월초등학교 학부모교육 강의를 갔다. 주제는 ‘인문학으로 만나는 인성교육’이어서 흥미와 재미는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머니가 참석하여 열심히 경청하고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하였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가슴 뭉클하였다.

본교의 허필현 교장은 2018년 ‘보금자리’라는 작품으로 <수필과 비평>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수필가이다. 글 솜씨도 뛰어나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열정을 가지신 분이다. 학교의 경영도 옹골차게 하는듯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는 자기가 살았던 굴이 있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라는 뜻이다. 의미는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더욱 수구초심의 마음이 깊어진다고 한다. 아늑한 보금자리가 필요해진다. ‘둥지’가 있어야 한다.

강태공은 위수(渭水)강가에서 낚시를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이 때 문왕(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문왕의 아들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이 된다. 그 공로로 강태공은 영구(營丘)땅에 제후로 봉해진다. 나라 이름이 제나라이다. 제후에 봉해진 강태공은 죽어서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의 도읍지 호경(鎬京)에 묻히게 된다. 5대에 걸쳐 제나라의 제후들을 주나라의 수도 호경에 장사 지냈다. 이것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음악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즐기지만, 예의는 그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중국 순임금은 요임금의 덕을 흠모하여 ‘대소’라는 음악을 지어 불렀으며, 순임금의 뒤를 이은 우임금은 홍수를 잘 다스려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되게 하여 ‘대하’라는 음악을 지어 즐겼다고 한다. 음악의 자연발생적 이치는 즐거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베풀어주는 기쁨에서 오는 것이다. 기쁨은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어야 한다. 예의를 잊지 않아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태공은 ‘착한 것을 보거든 갈증이 날 때 물 본 듯이 찾아야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귀먹은 듯이 하라.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욕을 내어야 하고, 악한 것은 절대 즐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옛 사람들은 비록 동물이지만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이야 말로 ‘어짊(仁)’의 표상으로 비유했던듯하다. 북쪽에 살던 말들은 북풍이 불 때 마다 항상 머리를 들어 북쪽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또한 남쪽에서 날아 온 철새들은 나무에 보금자리를 만들 때 반드시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 집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특히 수구초심이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필자도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했다. 가끔씩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초심자처럼 의욕이 넘쳐 겁도 없이 강의를 한다. 학부모에게는 아이들에게 ‘욕심을 너무 부리지 말라.’고 하면서도 말이 많아 강의 시간을 훌쩍 넘긴다. 이건 분명 이율배반이다.

공자는 ‘사달이이의(辭達而已矣)’라 했다. ‘말과 글은 간단명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이 쉽지 실천궁행이 어렵다. 많이 노력해야 할듯하다.

한식날 조상의 산소를 돌보기 위하여 고향에 갔었다. 동네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하룻밤을 세우며 지난날의 이야기꽃을 피우며 보냈다. 장작으로 군불을 땐 아랫목에 배를 깔고 드러눕고 싶었다. 호롱불이 그리웠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호랑이, 늑대, 꾀 많은 여우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방문을 열고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고 싶었다. 밤마다 들리는 이름 모를 새소리도 듣고 싶었다. 옛날 고향은 그랬다. 정겨웠었다.

이제 그곳엔 전기가 들어오고, 고속도로 같은 큰길이 생기면서 야산이 없어졌다. 비행장이 들어오면서 논밭이 없어지고 소음이 생겼다. 동네의 모습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났다. 옛 고향의 모습이 아니다. 따스함이 없다. 라면을 삶듯이 휘휘 저어가며 살아가는 삶에서 고향이 사라져 간다. 젓가락으로 젓다가 만 라면의 올이 멈추는 곳이 고향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도 태어난 고향엔 따스한 추억이 있었다. 기억되는 일들이 있었다. 아름다움이 있었다.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에겐 학교도 그런 곳이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생각한다.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하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동영상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