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로 마음의 혼탁 쓸어낸 ‘화폭 위 구도자’
빗자루로 마음의 혼탁 쓸어낸 ‘화폭 위 구도자’
  • 황인옥
  • 승인 2019.04.14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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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옥展 이달까지 스페이스 174
대빗자루 비구상 동양화 작가
병마와 싸우다 15년만에 화단에
들풀 강인한 생명력에 사로잡혀
수행자의 자세로 ‘선화’ 그려
육체 고통 뛰어넘어 득도 경지
양성옥전
양성옥 개인전이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의 새 대안공간인 스페이스 174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양성옥 작가가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묘한 먹빛을 허락했을 뿐인데 우주가 화폭에 실렸다. 먹으로부터 시작된 변주가 아스라하다 못해 꿈같다. 침묵과 아우성,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위용(威容) 앞에서 숙연함이 밀려온다. 양성옥이 빗자루를 쓸고 두드려서 완성한 ‘쓸다’ 연작이다. 빗자루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다. 작품을 보고 작가를 만났는데 “아~” 하는 탄식이 터졌다. 우주의 기운을 화폭 가득 들여놓기에 너무나 가느려 보이는 60대 후반의 여인이었다. 작가는 15년간 투병하며 미술계를 떠나 있었다. 이번 전시가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는 신호탄이다. “15년 만의 세상 나들이인데 전시하기를 잘 했다 싶어요.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양성옥은 빗자루 작가로 알려져 있다. 붓 대신 대나무 잎으로 직접 만든 빗자루로 화폭을 쓸거나 두드리거나 뿌려서 그림을 그린다. 빗자루에 대한 아이디어는 세기말로 거슬러간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세기말, 변화를 열망하던 사회분위기와 작가의 염원이 다르지 않았고 그때 뇌리를 스친 것이 빗자루였다. “빗자루로 세상의 혼탁함을 쓸어내고 새 물결로 바꾸고 싶었어요.”

작업의 모티브는 들풀이다. 작가가 스스로를 ‘야초’(野草·들풀)라 일컬을 만큼 들풀은 자화상과도 같다. 들풀의 생명력과 치유력에 본능적으로 사로잡혀 들풀에 자신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들풀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원 재학 시기였다. 40대 중반에 4수(修)끝에 영남대 미술대학원에 진학했으나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것과 40대 중반에 미술공부를 시작했다는 편견에 직면했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변화가 필요할 시점에 빗자루로 청소하다 도(道)를 깨달은 선(禪)불교의 중흥조로 숭앙(崇仰)받는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이거다 싶었다. 이때부터 들풀을 소재로, 빗자루를 매개로 하는 수행이 목적인 선화(禪畵)가 시작됐다.

“들풀과 선화와의 상관관계가 제 예술의 화두가 되었어요. 혜능 선사가 구도자의 마음으로 빗자루를 쓸었듯이 저도 빗자루로 들풀을 그리며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작업 초기에 질경이를 만다라 같은 동그라미로 그려냈다. 무질서 가운데 상생(相生)의 가치에 순응하는 자연의 질서를 들풀 만다라로 풀어냈다. 이후 빗자루를 사용하면서 들풀의 추상성과 삶에 대한 성찰은 깊어갔다. 동양의 먹과 서양의 물감을 혼용하면서 침잠하면서도 기운생동하는 특유의 입체감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선화(禪畵)에 깊이감이 더해지는 시기였다. “먹과 아크릴물감 등을 묻혀 몇 겹을 두텁게 쓸면서 물성(物性)과 구성의 견고함을 표현해 나갔어요.”

빗자루와 선화(禪畵)라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확보하면서 늦깎이 화가는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의 ‘빗자루 설치전’을 시작으로 경산 양산에서 무려 4t 분량의 대빗자루 설치전을 열었다. 프랑스 주 화랑에서 두 번이나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늦게 시작한 조급함에 보폭을 너무 빨리했음일까? 2004년 1월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대빗자루로 비구상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 주목받던 작가가 병마 앞에 맥없이 무너진 것. “폐교된 달성군 구지면 오솔초등학교를 임차해 술과 담배를 서슴지 않으며 작업에 몰입했었죠. 그때 몸이 망가진 거죠.”

왼손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오른손 일부로는 그릴 수 있을 만큼의 회복세를 보이자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처럼 열정적인 쓸기나 뿌리기는 불가능하지만 대신 점을 찍는 방식으로 작업의 변화를 모색했다. 대빗자루에 먹물을 찍어 캔버스에 수십 번을 찍고 또 찍는 식이다. 사실 그마저도 성치 않은 몸으로는 고된 수행이다. 그러나 작가는 남다른 처지를 오히려 화폭 속 무한 겸손의 자양분으로 인식한다. 쓰러지기 이전보다 깊어진 추상성 또한 그로부터 왔음이다. “수없이 많은 반복을 하다보면 나는 없어지고 우주가 내 손을 통해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불편한 몸이지만 “진리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비워낸다’거나 ‘비워내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는 경지는 지났다고 했다. “무심(無心)으로 작업하는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도 했다. “몸이 점점 더 좋아져 예전처럼 작업할 희망도 가진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프기 전에는 어떤 경향을 해야겠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욕망이 사라져 오히려 편안해요. 앞으로 제한없이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시는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의 새 대안공간인 스페이스 174(대구시 수성구 희망로 174)에서 30일까지. 053-422-1293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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