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서 다시 봄
되돌아서 다시 봄
  • 승인 2019.04.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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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시인)
도서관으로 가는 길, 차량정체가 계속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막힘없이 원활하던 도로였다. 수업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사고라도 난건지 아니면 초보운전자들의 도로연수가 있는 것인지 조급한 마음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기린 목처럼, 창밖으로 고개를 쭉 내밀어도 보고 듣고 있던 음악 속으로 화나는 마음을 파묻기라도 하듯 볼륨을 크게 올리기도 했지만 급한 마음을 한껏 연소시키지 못한 차들이 하나 둘씩 내 차를 앞질러 갔다. 간혹 육두문자를 휘갈기며 지나는 이도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이 기막힌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쩔쩔매고 있는 소형차 한 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답답하시지요? 저는 환장하겠습니다.”

얼마 전, 첫 수업 날이었다. 많은 과목들 중 하필 글쓰기 수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에 대해 소개 겸 첫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교직에 있었다는 분, 기억이 자꾸만 흐려진다는 분, 가족만을 위해 사느라 자신이 누군지를 알고 싶어 오셨다는 분, 책 속이나 글 속에서 놀고 싶었다는 분, 학력이나 배경 스펙보다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하시다는 분 등, 사연 없는 사람이 없는 듯 보였다. 그 중 그녀가 있었다.

바닥에 닿을 만큼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한참동안 말을 잇지 않은 채 마이크만 만지작거렸다. 그러기를 한참, 헛기침과 가쁜 숨을 번갈이 몰아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지 백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믿기지도 않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자꾸 눈물만 난다며 들었던 마이크를 놓고 돌아서서 또 그렇게 울었다. 남편은 늘 버스도 지하철도 위험하니 타지 말라고 했단다.

온실 속 화초처럼 남편의 그늘 안에서 살림만 하고 살았는데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 십리”라더니 자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단다. 이런 것이 무슨 인생이냐고 자신에게 화가 나 가슴을 치던 순간 결혼 후, 밀쳐 두었던 문학에의 꿈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타들어가는 속을 풀어내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겠다 싶었다고 한다. 지켜보던 선생님도 우리들 그 누구도 침묵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나 역시 한 가정의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그 누구도 강요한적 없는 책임감의 무게로부터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써야겠다며 전단지 한 장을 들고 도서관을 찾았던 그 때, 손을 내 밀어 잡아주던 그 누군가의 첫 손길을 지금까지 나는 기억한다. 내 생애 처음 초보 운전이란 스티커를 등 뒤에 붙이고 도로를 나서던 때처럼 내일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설레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진흙탕에 빠져 발만 내려다보며 걷기보단 저만치 말끔한 새 길을 바라보며 걷느냐의 차이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부터 다를 것이다.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삶이 긴장되고 애민해질 때일수록, 싫은 것을 떨쳐내기보다 좋은걸 끌어당기는 말들이나 격려가 되고 기분도 좋아질 그런 말을 골라 나누고 마음에 담아 보는 건 어떨까.

‘적자 생존’이란 말과 더불어 ‘생활 수필’이라고 이름 지으신 조병렬 선생님의 첫 훈화 말씀에 담긴 뜻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교실을 둘러본다.

만원버스처럼, 중년을 거의 넘긴 사람들로 빼곡 했지만 배움에의 열정은 복사꽃마냥 싱그럽고 화사하다.

직진으로만 달려갈 수 없는 삶, 때론 그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유턴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상처받고 흔들리는 것의 무한한 생명력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치유함으로 바꾸는 일쯤이야, 지천명(知天命)을 지나온 이 나이에 뭐든 가능하지 않을까.

매번 오는 봄이 다르듯 유턴해서 되돌아가는 길이라도 걸어 온 길과는 분명 다른 길이라는 것을 믿는다. 신경질적으로 경적이 울린다. 뒤차다.

생머리 바람에 날리며 나는 지금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다. 생생한 아침 봄바람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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