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옷 입은 소나무, 꽃보다 아름답다
봄옷 입은 소나무, 꽃보다 아름답다
  • 황인옥
  • 승인 2019.04.1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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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쌍웅展 27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길상의 의미 소나무에 부여
캔버스에 나이테 한지 붙여
동서양 재료 혼용 개별성 살려
기와 작품·색상 변화모색도
윤쌍웅
소나무에 기원을 담아내는 윤쌍웅이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 기업총수, 대사관이 소장한 그림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작품을 코앞에서 보기 위함이다. 정재계 인사들이 앞다투어 찾을 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법. 그것이 궁금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수화. 산과 강과 폭포수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먼 배경으로 깔렸다. 그리고 화폭 중앙에 기개 넘치는 소나무를 위용 있게 배치했다. 표현법은 달라도 구성면에서 딱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屛風)’다. 작가 윤쌍웅이 “현대판 일월오봉도”라며 씽긋 웃었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동시에 왕조가 영구히 지속되리라는 염원을 담은 조선왕실 회화의 대표주자다.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붉은 해, 하얀 달, 두 줄기의 폭포수, 산봉우리 아래 넘실거리는 물결, 좌우 언덕의 소나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로 병풍으로 그려져 조선 시대 어좌의 뒷편에 놓였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했다지만 윤쌍웅의 그림도 분명 ‘일월오봉도’. ‘왕의 그림’이다. 그제야 유명 인사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한 속내가 읽혔다.

“일월오봉도가 조선왕실의 영원을 염원했듯이 제 그림에도 길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일월송(日月松)에 재물과 무병장수, 소원성취 등 복과 풍요로움에 대한 염원을 담았죠.”

윤쌍웅은 소나무 작가로 불린다. 작품 제목도 일월송이다. 주인공이 소나무다. 특히 원급법으로 소나무를 쭈욱 당겨서 강조한다. 조선회화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屛風)가 각각의 구성요소들에 골고루 의미를 부여한 것에 비해 작가의 ‘일월송’은 길상의 의미를 소나무에 집중 부각한다. 일종의 강조법이다. “선비의 기개와 우직한 충절, 자손 번창과 풍요로움 등의 상징들을 소나무에 투영하고 있죠.” 이때 소나무는 한 그루도 있지만 대개 두 세 그루 단위로 묶어서 그린다. 휘어진 두 그루의 소나무는 인내와 열정을, 세 그루는 대대손손 3대의 ‘복’을 의미한다.

“‘울타리 안에 소나무 세 그루만 있으면 아픈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양의 기운이 강한 곳은 소나무의 양기가 더해져 편안함이 배가 되고, 음기가 강한 곳은 보완해 주어 균형을 이룬다는 거죠.”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굽었거나 뒤틀렸다. 가지들도 다분히 작위적이다. 흡사 분재를 보는 느낌이다. 그가 “어릴 때부터 소나무 분재에 관심이 많아 농원을 찾아가 분재를 구경하곤 했다”고 했다. “목재가 될 만한 소나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수탈해가고 굽고 휘어진 소나무만 산을 지켰어요. 어쩌면 그 소나무야말로 굴곡진 역사를 견뎌낸 우리민족의 기개가 아닐까 싶어요.”

표현법도 이채롭다. 먼저 화폭 전체에 드러나는 나무의 나이테 문양이 낯설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화풍이다. 작가가 “초기에는 붓으로 그리다가 특수 기법으로 한지에 나이테 문양을 새겼다. 그랬더니 마티에르가 드러났다”고 했다. 작업은 캔버스에 특수 가공한 한지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한지에 새겨진 나이테 문양을 배경으로 수묵화나 수묵채색을 그린다. “여기까지는 일반 산수화나 수묵채색화와 다를 바 없죠.” 문제는 이후부터다. 정상으로 그린 산수화에 작가의 개별성을 입힌다. 주연과 조연 구분을 확실히 하고 서양의 물감과 동양의 기법을 혼용하는 것. 주제를 명확화 하기 위해 주·조연을 명확히 하고 채색도 다채롭게 병행한다.

“정상적으로 그렸던 산수화를 조연으로 밀어내기 위해 색을 떨어트리고 형태를 흐릿하게 처리해요. 반면에 주인공인 소나무를 더욱 돋보이게 강조하죠.”

소나무를 주제로 7년을 그렸지만 미세한 변화도 거쳐왔다. 이제 작가 얼굴은 몰라도 그림을 보면 윤쌍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책임감 또한 무거워진다고 했다. 특유의 소나무 기법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강박증도 생겼다고 했다. 기와 그림은 그 연장선에 있다. 작가는 200~700년 된 기와를 캔버스 삼아 소나무를 그린다. 주로 사찰 기와들이다. “기도가 많은 장소에서 몇 백년을 버텼던 기와인 만큼 기와 자체에도 기도와 소망이 깃들어 있겠죠. 거기에 소나무를 그리니 좋은 기운이 넘실대겠죠.”

또 다른 변화는 색이다. 색채가 점점 화려해지고 있는 것. 그림이 작가 내면의 표현이라고 봤을 때 작가는 현재 가장 행복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대구아트페스티벌2019 1부 행사에 부스를 꾸리고 내놓은 전시작들에도 봄 기운이 완연하다. 배경도, 소나무도 꽃보다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한국인 고유의 소박함도 견지하며 균형을 맞춘다. 그가 “내 안의 행복감이 색채로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30년 동안 50여회의 개인전에서 관람객과 소통하며 성장하고 행복해졌어요. 저의 그 마음 속 에너지를 관람객들도 느꼈으면 해요.” 지금까지 국내를 비롯해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 미국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으며,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윤쌍웅이 참여하는 대구아트페스티벌2019 1부 행사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27일까지. 053-653-812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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