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에 투영시킨 자유에 대한 갈망… 대구문예회관 신경미 부스展
봉황에 투영시킨 자유에 대한 갈망… 대구문예회관 신경미 부스展
  • 황인옥
  • 승인 2019.04.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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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내역 물고기로 대변
단색·간결한 선으로 변신 시도
100호 5개 연결한 대작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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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미 작가가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구나 십자가 하나는 짊어지고 산다. 설사 객관적으로 100% 퍼펙트 한 인생인 것 같아도 주관적인 결핍이나 고통은 있기 마련. 이럴 경우 유독 자신의 십자가가 상대적으로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측은한지 모른다. 사실 측은함 하면 서양화가 신경미(사진)를 능가할 이가 없었다. 지극히 작가의 주관적인 평가라고 치부하기에 그의 상황이 녹록치는 않았다. “남다르게 책임이 무거웠던 종갓집 며느리와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어요. 호남 출신으로 생면부지 대구에서 작가로 사는 것은 더욱 힘들었구요.”

신경미 회화의 등장인물은 봉황, 여인, 물고기다. 봉황이나 여인은 그녀의 자화상이다. 상스러움의 대명사인 봉황은 상상의 새로 가슴은 인(仁), 날개는 의(義), 등은 예(禮), 머리는 덕(德), 배는 (信)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는 우주전체를 의미하는데, 작가가 희망하는 자화상에 해당된다. “한 객체로써, 화가로써 우주를 품고도 남을 만큼의 자유와 가능성을 지닌 봉황이 되고 싶어요.” 이에 반해 머리위나 몸 주변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물고기와 함께 있는 물고기여인은 엄마와 아내로 살고 있는 현재의 처지를 대변한다.

봉황과 물고기 여인은 이미 작가의 분신이 된지 오래다. 이번 대구아트페어2019 부스전에 출품한 작업들도 봉황과 물고기여인이다. 그러나 이전 작업들과는 달라진 감이 있다. 작품의 규모가 대형 위주이며 색채나 형태도 이전보다 밝아졌다. 예술을 예술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매개이자 철학적 사유의 결과라고 정의 내릴 때 최근의 변화는 신상과 맞물린다. 작가가 환하게 웃으며 “6년간 작업했던 작업실을 2년 전에 옮겼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겼더니 몸도 좋아지고 기분도 밝아졌다”며 변화의 단초를 언급했다.

“2년 전만 해도 힘들 때 였어요. 그때의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색상도 어둡고 우울했어요. 봉황이 비상하지 않고 한쪽 날개가 접혔고, 눈알도 그리지 않았죠. 물고기 여인의 눈에도 눈물이 비쳤구요. 그러나 작업실 환경이 좋아지니 작품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부스에 걸린 작품 ‘봉황’ 연작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100호짜리 5개를 더해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한 규모도 놀랍고, 비상하는 봉황의 크기와 색채의 화려함도 압권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봉황과 물고기여인을 100호짜리 10개로 스토리텔링하고 있어요. 이번 부스전에는 공간제한으로 5개만 걸었을 뿐이죠.”

화풍은 변해도 주제는 변함없다. 때로는 짓누르는 의무감과 무거운 책임감에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작가는 화가 이전에 여전히 어머니이고 며느리다. 작품 초기부터 염원했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화목에 대한 기대는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키워드로 자리한다. 작가의 작품이 ‘희망찬가’인 이유다. “제 정체성이 그림의 주제에요. 그 정체성이 변하면 제가 아니지 않겠어요?”

10m짜리 대형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에너지도 에너지 이지만 형상들의 구성도 만만치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설계도’다. 작가는 즉흥적인 일필휘지 대신 스토리텔링이라는 설계도를 가지고 작업한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규모도 걱정이지만 돈도 문제다. 대작을 그리는데 적어도 500만원 이상의 예산이 드는 것. 그나마 최근에는 작품들이 팔리기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생활 속에서 다이어트를 했어요. 취미활동도 전혀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죠. 돈의 사용처를 최소화해서 작업에 올인하고 있죠.”

이번 부스전에 내놓은 신작 봉황에서 또 한번의 변화가 시도됐다. 화려한 색채의 향연 대신 단색 위주로 흐르고, 몇 개의 간결한 선으로 비상하는 봉황의 역동성을 대신한다. 여백은 반복적인 작은 꽃모양 형태로 채웠다. ‘미니멀’로의 변화이자 추상으로의 현현(顯現)이다. “작업하면서 마냥 행복했던 지난 2년이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시기라면 지금은 깊어지는 것 같아요. 좀 내려놓고 비워지고 있죠.” 전시는 21일까지 문화예술회관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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