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법인 ‘한사랑’ 중심
다양한 산하기관 설립·운영
한때 주민들 반대 있었지만
끈질긴 설득 모두 동의 얻어
이제는 특별하게 구분 않고
서로 같은 구성원으로 생각
따뜻한 공동체로 자리매김
안심마을은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은 1992년 대구대 특수교육학과 졸업생들이 대구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중증 저소득 장애유아를 위한 조기교육실 ‘한사랑’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경제적 이유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중증 저소득 장애아들을 대상으로 특수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법인을 만들었다. 이후 장애전담어린이집 인가를 받아 운영을 해오다 지난 2002년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원아들이 성장하자 그 부모들이 추가적인 서비스와 기관 설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복지법인 한사랑의 산하기관들이 생겨나며 점점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방과 후 교육기관, 성인들의 주간보호센터, 그룹 홈 3개소,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가 연이어 만들어졌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한사랑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의 확장을 위해 신기동으로의 이전이 결정되자 일부 신기동 주민들이 반발한 것이다. 하지만 장애부모, 관계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반대자들을 설득한 끝에 결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 이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란성 발달장애 아이를 둔 안심마을의 한 부부는 동네의 한 카페를 자주 방문한다. 그 카페에서는 아이가 떠들어도 아무도 면박 주지 않고 장애가 있다고 해서 뾰족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 엄마는 차를 마시는 동안 아이는 카페 옆 횟집의 수족관 안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이 익숙하다. 어느 날 그 아이와 엄마는 여느 때처럼 카페를 찾았다. 여느 때처럼 엄마가 음료를 마시는 동안 아이는 사고를 쳤다. 돌을 던져 수족관 유리를 깨버린 것이다.
횟집 사장님은 친숙한 동네 이웃이 저지른 일이라 얼굴 붉히지 않고 원만한 제안을 했다. 수족관 고기가 바닥에 떨어져 상품성이 없어졌으니 물고기의 원가만 받고 그날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감사를 표하며 다른 제안을 했다. 본인이 횟값을 지불하고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술자리를 갖기로 결정했다. 사정을 들은 마을 주민들이 횟집에 모였다. 그날 벌어진 일을 안주삼아 소주 한 잔씩 마시고 일어나고, 또 다음 사람이 들어오며 마을 사람 100여 명이 횟집을 다녀갔다. 초대받은 주민들은 자리를 뜨며 각자 조금씩 돈을 지불했다.
그날 횟값은 70만 원, 술값은 50만원으로 총 120만원이 나왔다. 주민들이 조금씩 지불한 돈으로 비용에서 제하자 아이 아버지가 부담한 돈은 10여 만 원이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여러 사람이 나누면 부담이 줄어드는 것, 안심마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주민들은 본인들이 특별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형배(47·대구 동구 율하동)씨는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을 주민들은 희생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며 “주민들은 그냥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 단지 구성원들 중 일부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
석지윤기자 aid1021@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