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산 넘어 산 있다
<대구논단>산 넘어 산 있다
  • 승인 2010.03.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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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옛 어른들이 남긴 풍수(風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인간사는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고수(高手)라 할지라도 그 위에 또 다른 고수가 있어 늘 반전이 이루어진다. 결국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계속 갈고 닦으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교훈을 준다.

풍수에서 말하는 혈(穴)로는 연화출수형(蓮花出水形),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등 그 이름만으로도 현란한 명당이 무수히 많지만, 꿩이 안전하게 엎드려 있다는 형국인 복치형(伏稚形) 또한 대단한 명당(明堂)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 선조 때에 이의신(李懿信)이라는 유명한 명 풍수가 있었다. 이의신은 관북지방에서 용맥을 쫓아서 내려오다가 오늘날의 양주(楊州), 송산(松山)에 와서 그 맥이 서리어 마치 꿩이 엎드려 있는 형세인 복치혈(伏稚穴)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의신은 산을 헤매느라 끼니를 많이 굶어 아랫마을의 한 집으로 들어가 허기를 면하게 해 줄 것을 청하게 되였다. 여러 집에서 거절당했는데 마침 상(喪)을 당한 집이 있어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원래 궁핍한데다 보시다시피 상을 당해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죽 한 그릇을 정성껏 내어 주었다 . 이의신은 고마워하며 상주에게 말하였다. “제가 부족하지만 산서(山書)를 몇 권 읽었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으니 묘 터를 좀 보아드리고자 하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고마워 할 사람은 터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 상주였다. 이의신은 맞은편 산으로 가서 한 자리를 정해 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후에 어떤 지관이 나타나서 이 묘를 이장(移葬)해야 된다고 할 것이오. 그럼 손님을 집에 붙들어 두고 얼른 저를 찾아오십시오. 제 집은 한양 서학현(西學峴) 비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상주는 그 말을 듣고 선친의 산소를 그 자리에 썼는데 그 후로 점점 가정이 번창해지고 큰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연 이 집으로 한 손님이 들어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저 건너편 언덕에 있는 산소는 매우 좋은 명당이지만 이제 10년이 지나서 운기(運氣)가 끝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빨리 옮겨야지 그대로 두면 집안이 기울고 재앙이 닥치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주인은 깜짝 놀라 손을 꼽아보니 정말 10년이 지나있었다. 주인은 얼른 말을 달려 한양으로 가서 이의신의 집을 찾았다. 이의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와 같이 양주로 내려왔다. “손님은 무슨 이유로 이 댁 묘를 이장해야 한다고 하십니까?”

“저 묘지의 지세는 꿩이 엎드리고 있는 형상인데 10년이 지나면 다리가 아파 그대로 엎드려 견디지 못하고 날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꿩이 날아가면 바로 운수가 다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이의신은 얼굴색을 고치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근래에 보기 드문 명 풍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만 보신 것 같습니다. 잠깐 저 둘레의 산을 좀 보십시오. 이곳 앞 봉우리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구현(狗峴)이고, 저 뒤편 봉우리는 매를 상징하는 응봉(鷹峰)입니다.

그리고 저 앞의 내는 고양이를 상징하는 묘천(猫川)이니 이 세 짐승이 꼼짝 않고 지키고 있는데, 그 속의 꿩이 어떻게 함부로 날아갈 수가 있단 말이오. 꿩은 계속 복(福)을 안고 엎드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만년 복치혈이 아니겠소?”

“아!” 이의신의 설명에 손님은 일어나 절을 하고는 제자가 될 것을 청하였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처럼 많은 고수들이 오늘도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산 넘어 산이 있고 물 건너 물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일신 일신 우일신(日新 日新 又日新) 그 역량을 길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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