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파에 지친 마음 쓰다듬는 전원풍경… 갤러리인슈바빙, 이광택展
세파에 지친 마음 쓰다듬는 전원풍경… 갤러리인슈바빙, 이광택展
  • 황인옥
  • 승인 2019.04.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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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매화…화폭에 옮긴 시골 풍경
나무 형태 동그랗게 그려 추상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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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에서의 은거를 통해 이상향을 찾아가는 이병택 개인전이 갤러리인슈바빙에서 열리고 있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려서인지 꽃송이들이 하늘로 솟구치기 직전이다. 원숙한 낙엽이야 겸손에 겨워 땅으로 침잠한다지만, 한창 청춘인 꽃송이들이 하늘에 폼을 내는 것은 허물이 될 수 없다. 꽃에 취한 달달함도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깊은 산속이다. 심산유곡(深山幽谷)의 과수원도 생경한데 창으로 새어 나오는 황색 불빛이 자지러지는 소담한 기와집은 의문의 핵이다. 마당 평상의 소박한 가족 저녁만찬 풍경에서는 상념이 사르르 녹는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무릉도원에 비견해도 이보다 촉촉할까 싶다. 작가 이광택(57)의 작품 ‘자연에 깃든 삶’이다.

“저수지 낚시를 갈 때면 개울이 흐르고 골이 깊은 산자락 아늑한 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 염원을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청바지를 입은 이광택 작가가 만개한 봄꽃 그림 앞에서 소년처럼 환하게 웃었다. 백발의 중년 화가의 미소에서 소년의 순수와 익살이 회오리쳤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누렸던 전원풍경들이 그림의 소재가 되고 있어요. 그때의 행복감이 아직도 온기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 화백이 갤러리인슈바빙(대구 중구 동덕로 21)에서 개인전 ‘그리운 자연 그리운 삶 그리운 사람’을 시작했다. 작가의 최근작부터 대표작까지 다채롭게 소개한다.

출세욕, 물욕, 권력욕에 잠식당한 세태에서 작가는 별종이었다. 미술계의 중심을 열망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시대에 춘천 소강강변에서 스스로를 은거(隱居)하는 백운(白雲)의 삶을 선택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곧바로 고향인 춘천으로 낙향했을 때만 해도 전도유망한 서울대학 출신 청년화가의 치기(稚氣) 어린 선택이라 치부했다. 그러나 그는 30년 동안 완고하게 고향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고 있다. 진정성과 순수성이 농익고도 남는 세월이다. 그가 “외로운 늑대로 살고 있다”고 했다.

“외로움과 고통을 승화시킨 후에야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보면 화가로 이름을 드높이기는 청운(靑雲)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나만의 이상향을 만들어가는 백운(白雲)이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었죠.”

그림의 배경은 과수원. 매화 만발한 봄 과수원을 주로 그린다. 이북에서 교직에 몸담았던 부친이 남한으로 피난 와서 과수(果樹) 농사를 지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화폭으로 옮아왔다. 작가가 “밤이면 형과 함께 산속 과수원에 촛불을 켜놓고 공부를 하곤 했다. 공부하다 밖을 보면 선비가 달빛에 비친 복숭아꽃 속에서 글을 읽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내가 화가가 된다면 이런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어요.”

작가의 과수원에는 집과 함께 가족이 반드시 등장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차를 마시거나 풍경에 취해 거나하게 술을 걸치고 있고, 지인 몇몇이 멀리서 술병을 들고 언덕을 오르고 광경이 펼쳐진다. 그림에서 과수원이 외적 지지대라면 가족은 내적 버팀목이다. “가족은 내 예술의 출발선이죠,” 그가 뇌리에 남아있는 먼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때는 1986년. 서울해군본부에서 중위로 복무하던 작가가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이중섭 화가의 대규모 유작전을 보고 인생의 결심을 하게 된다. “나는 꼭 결혼한다”고. “결혼에 반신반의(半信半疑)였는데 이중섭 화가의 예술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깨닫고 고향으로 내려오자 바로 결혼을 했죠.”

작품에 깔린 철학적 사유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장사상(老莊思想)이다. 이에 따라 자연이 중심이 되고, 인물과 집은 작게 그린다.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벗하며 사는 동양의 자연관의 표현이다. 시각적인 표현법에서도 동양성이 물씬 짙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전통문인화를 계승한 이광택표 문인화”라고 했다. 사실 작가는 38세에 중국 유학을 감행했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끊임없이 문인화가 의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기왕 공부하려면 문인화의 본원인 중국으로 가자는 결심을 하고, 쟝샤오강이 공부한 곳으로 유명한 중국 사천 미술학원 유화과 대학원에서 3년 반 동안의 유학했다. 그때 중국 각처를 돌며 중국 문인화의 세계를 섭렵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인화는 우리민족의 핏속에 면면히 이어온 정신이자 문화인데 백년의 역사에 불과한 서양화의 입장에서 고루하다고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어요.”

작가의 과수원이 달라졌다. 나무들이 몽글몽글 귀엽다. 올해 시도한 변화다. 왜곡과 변형의 결과인데 구상보다 추상에 더 근접했다. “궁극적으로 신품(神品) 너머의 경지인 현실세계를 벗어나는 일품(逸品)의 세계로 가야하는데, 그 시도라고 보면 되죠. 일품의 경지로 고통받는 현대인의 마음에 위안을 주고 싶어요.”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053-257-1728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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