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서해에서
  • 승인 2019.04.21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부회

펄의 알몸 뒤로 붉은 스란 한 폭이 펼쳐져있다

풍경이 풍경을 덧칠하는 동안

무미하게 주고받았던 안부는 커피처럼 식고

낮의 건조를 밀어내다 지쳐 어둠이 무뎌질 때쯤

웃자란 약속이 약속의 정형과 이별했다

그물 지지대 밖 밀물이 바닥을 되돌려 주고

디딘 만삭의 섬들이 제 높이를 키운다

켜켜이 올려놓은 모닥불 속

있어도 없는 사람이 사그락 불꽃이 된다

이따금 다려지는 어둠의 주름 속으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저마다의 불쏘시개들

갯벌로 스며들다 미처 못 지운 취기의 분장,

데워진 몸을 갯바람이 식힌다

동그란 얼굴, 입 밖으로 나온 이명의 솔깃한 부름에

소스라친 귀가 쑤욱 자란다

귀항지 멀리

뱃고동이 울린 것 같다

어쩌면 도착해 있을지도 모를 신호

청각의 바깥에

이미, 나는 없는데

◇김부회= 1963년 서울 태생. 제9회 중봉 문학상 대상, 김포신문詩칼럼연재(13~),(월) 모던 포엠 문학평론연재(14~),도서출판 사색의 정원 편집 주간, 시집: “시, 답지 않은 소리”(14)/ 물의 연가/ 느티나무의 엽서를 받다/ 모담산, 둥근 빛의 노래/척]외 다수 공저

<해설> 바닷물이 빠져 나간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스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풍경이 바뀌지만, 약속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약속은 깨지고 너의 모습만 모닥불 속에서 타닥거리고 있다. 낯선 이들이 던지는 불쏘시개 같은 말에 위안을 삼고 취기의 몸을 갯바람에 식히고 있다. 온통 귀는 금방이라도 달려올 귀항지에 곤두서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뱃고동 소리가 울리지만, 어긋난 약속에 이미 내가 없다. -김인강(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