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오지랖 넓은’ 문대통령의 고민
[윤덕우 칼럼] ‘오지랖 넓은’ 문대통령의 고민
  • 승인 2019.04.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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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주필 겸 편집국장)

며칠 있으면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이다. 1년 전 ‘평화가 경제’라는 구호에 국민들은 몹시 들떴다. 대북관련주니 남북경협주니 하면서 주식시장의 반응도 뜨거웠다. 얼마 동안 폭등세를 보였던 관련 주식들은 1년이 지난 지금 거의 제자리로 주저 앉았다. 일전에 청와대가 제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공식화했으나 시장은 냉랭하다.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약속. 한두번 속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큰 기대감이 없는 듯하다.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김정은은 묵묵부답이다. 대신에 언제 그랬느냐듯이 하노이 미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안보정세는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문대통령의 잘못이라면 동맹국인 미국의 눈치까지 보면서도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준 것 뿐이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제재를 빨리 완화해 북한의 숨통을 트게 해주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되돌아온 말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다. 웃으며 세번이나 만났고 평양까지 방문했던 아버지뻘 연세인 문 대통령에게 내뱉을 말은 결코 아니다. ‘마음씨 좋은’ 문대통령은 그래도 김정은의 그런 발언에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러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북한 인권문제에서 핵물질 제조는 물론 신형무기 도발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서 채택 이후 지금까지 20여 차례나 우리 군의 군사 활동을 비난해왔다. 북한당국의 심기는 건드리면 안된다. ‘평화가 곧 경제’라는 문대통령의 믿음 때문이다.

반면에 북한의 불만은 미국을 향해서도 쏟아지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0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향해 “멍청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볼턴 보좌관이 지난 17일(현지시각)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무엇을 보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라고 답한 데 대한 반발이다. 지난 18일에는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국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협상창구에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권 국장은 “일이 될만 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가곤 한다”며 이같이 요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9일(현지시각) 기자들에게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며 교체 가능성을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3차 미북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정은은 문대통령의 4차 남북정상회담 공식제의에는 답변을 회피한 채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대한민국이 미국과 그러하듯이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6.25때부터 얼마 간의 냉각기간을 제외하고는 혈맹 관계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빼닮으려 노력한다. 두발에서 의상까지 김일성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김일성은 러시아 연방 이전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의 신봉자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美핵우산 철수를 노린 ‘조선반도비핵화’를 강조하고 ‘사회주의’는 32차례나 언급했다. 사회주의 언급이 전년도 신년사보다 11회나 더 늘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다. 자신들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그대로 둔채 미국에 ‘상응조치’부터 요구하는 논리도 반복됐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이 됐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북한의 전략은 중국과 옛 소련의 전략 그대로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헨리 키신저의 저서 ’핵무기와 외교정책‘(1957). 이 책은 소련과 중국 등 당시 공산국가의 외교정책을 보는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외교가에서 필독서로 읽힌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물론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예외가 아니다. 키신저는 이책에서 “양보란 가치없는 일이다”,“전략적인 호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온건하다는 표시가 아니라 나약하다는 사실의 표현이다” 등을 소련의 외교전략 이론으로 소개했다. 그는 또 “우리는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자비,정의, 도덕 등 우둔한 주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국의 눈을 감기고 귀를 멀게 하는데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 할 것이다”는 모택동 선집2권을 인용하기도 했다. 키신저는 이런 이유로 “정상적인 외교 방법을 가지고 혁명국가와 협상 하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미북간 비핵화 협상 교착국면 타개에 나서고 있으나 미북간의 입장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오지랖 넓은’문대통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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