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가 된 도자기…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 김판준 도예전
캔버스가 된 도자기…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 김판준 도예전
  • 황인옥
  • 승인 2019.04.23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항아리·벽에 거는 도자기 등 40여점 공개
도자에 경주의 하늘·별·달 유년 풍경 담아
신작에 보문호 풍경…눈길 끄는 대작 다수
도예가 김판준
유년시절 경주의 풍경을 현대적 감각의 도자기로 되살리는 도예가 김판준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캔버스에 도자기를 그리는 시대에 도자기에 회화를 그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림으로 빚은 도자기나 도자기로 그린 그림이나 따지고 보면 실험정신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렇더라도 도예가 김판준(57·사진)의 도자기 앞에 서면 “회화를 하지 왜 도자기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워낙에 짙은 회화성 때문. 색채의 다양성, 형상이나 기법 등에서 회화적인 요소가 톡톡 튀어 오른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벽에 거는 도자기 작품 2점은 도자기의 이름을 빌은 ‘회화’, 일명 ‘도자 회화’였다. 캔버스의 형태를 한 사각 도판에 수양버들 드리운 강가에서 노니는 오리의 평화로운 풍경이 새겨져 있다. 작가가 “고향 경주 보문호의 풍경”이라고 했다.

도예가 김판준 개인전이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시작됐다. 특유의 미감이 돋보이는 달항아리와 대형접시, 벽에 거는 도자기 등 40여점을 소개한다. 경주 보문호 풍경을 그린 신작들로 대규모로 꾸렸다.

도예가로 45년을 살았다.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찰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적인 감각의 도자기”만 고집한 점이 그래 보인다. “처음 도자기를 시작할 때부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어요. 남과 같이 하는 것은 흥미가 없었죠.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죠.”

일단 크기에서 차별화가 두드러진다. 접시의 경우 지름이 60~100㎝가 넘는다. 20~30㎝에 그치는 일반적인 접시 지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시원한 스케일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기에 도자기에 그린 짙은 회화성은 김판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됐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보문호에 늘어뜨려진 가지 사이로 비치는 별과 오리들이 일으키는 물보라의 표현은 가히 일품이다. “DNA속에 남다른 자유분방함이 내재된 것 같아요. 도전정신도 강하죠.”

무엇이든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가공한 흙과 유약이 보편화된 시대에 흙과 유약을 직접 만든다. 그마저 작품 경향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개발한 흙과 유약의 종류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쯤 되면 무모하다고 해야 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그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공고와 경주공고만 요업과가 있었다”며 “운좋게 경주공고를 다녔다. 일찍부터 도자기가 손에 익어 두려움이 없었다”고 수줍은 듯 웃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학교 때 미술 교사의 조언이 컸다. “제가 비누조각 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서 ‘너는 미술대학에 가서 조소나 도자기를 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제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타가 됐죠.”

경주 남산이나 보문호를 서정성으로 표현한다. 어린시절 고향 경주의 풍경이다. 경주 남산을 뛰놀며 보았던 하늘, 별, 해와 달을 그리다가 지금은 보문호의 수양버들, 오리떼, 흐드러진 매화를 도자기 위에 되살리고 있다. 단순하게 추억 속의 풍경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예전 같지 않은 남산과 보문호를 되살리자는 구호도 담는다. 그 출발선에 ‘애향심’ 있다. “경주에 대한 기억이 아름다울수록 보존에 대한 염원도 강했어요. ‘애향심’이 도자기에 사회참여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죠.”

김판준-유년의기억
김판준 작 '유년의 기억'

김판준 하면 삼족오가 연상되는 삼족기다. 전 계명대 미대 교수였던 김영태 도예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꽃을 피운 것은 김판준이다. 작가는 항아리 밑에 세 개의 다리를 지지대처럼 올린다. 삼족기가 대작의 위용을 떠받치는 형국이다. 실용성보다 장식성을 염두에 둔 선택이다. 한창 전통차가 강세를 보이던 시기에도 작가는 차도구를 전문으로 만들지 않았다. “대작을 할 때 맛보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후배나 동료들의 공방 작업을 침범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적지 않았어요.”

작가도, 작품도 경주를 닮아있다. 투박하지만 따뜻하고, 그윽하다. 그가 “이제는 손 가는 대로 해도 형태가 나온다”고 했다. “물레를 돌려도 의지대로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경지는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회화가 아닌 이상, 불과 흙과 도공의 삼합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다. 칼날처럼 팽팽한 균형이 뒤따를 때라야 비로소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도자기 작업은 실패율이 높다. 그가 “지금도 여전히 힘들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며 도자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물레를 돌리고 유약을 바르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지금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더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답니다.(웃음)” 전시는 28일까지. 053-420-8015∼6

황인옥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