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에서 희미해지는 나
군중 속에서 희미해지는 나
  • 황인옥
  • 승인 2019.04.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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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展 아트클럽 삼덕
현대인의 고독·공허함
줄 지은 모습으로 도식화
정지원전
정지윤 전시가 아트클럽 삼덕에서 내달 5일까지 열린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드는 시기는 그야말로 질풍노도(疾風怒濤). 하얀 백지와도 같다. 작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작품 세계 구축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어떤 주제와 형식 또는 장르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상념이 길어진다. 정지윤이 학부 4학년 졸업 작품에 담았던 고민의 결과는 도시 이미지였다. 도시에 늘어선 건물들의 외향을 빈껍데기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오버랩했다. “주변이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대학원에 가서도 그 작업을 계속하게 됐죠.”

도시 이미지는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했다. 복제되거나 패턴화로 가기도 했다. 그럴수록 주위 반응은 더욱 달아올랐다. 작가 역시도 처음에는 재미를 느꼈고, 열심히 작업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을 치는 공허함에 소스라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제가 작품을 이끌어가던 것이 어느 순간 반대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변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새로운 작업 구상을 위해 1년간 휴업하며, 여러 기법을 실험해 나갔다. 그러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터치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거다!” 싶었다. 시작은 자화상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즉흥적인 붓 터치로 그려냈다. 색은 모노톤으로, 얼굴 형태도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 작품 제목도 ‘깨어나기 위한’ 연작이었다.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저의 태도를 보면서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형체를 뭉갠 것 같아요.” 도시 이미지에서 자화상으로 형체는 변했지만 ‘공허함’이라는 주제는 그대로였다.

자화상은 오래하지 않았다. 대신 졸업식 풍경을 그렸다. 군중의 등장이었다. “지성과 자유의 전당이라고 생각한 대학이라는 곳이 교수님의 교육 방향이나 사회의 틀이 지배하는 곳”임을 깨닫게 되자 외로움이 밀려왔다. ‘인간소외’, 또는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주제의 출현이었다.

군중들을 표현하는 방법은 ‘도열’. 일렬로 늘어서있는 모습을 주로 표현한다. “현대인이 놓여진 처지”에 대한 표현이다. 처음에는 도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을 강화홰 패턴화로 치닫기도 했다. 주제강화를 위한 방법론이었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놔두질 않죠. 그런 답답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군중 속의 고독이죠.”

작품 ‘ Conditional reflection’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운동장에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줄맞춰 서있고, 국민의례 중 국기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는 장면으로 짐작되는 이미지들이 표현됐다. 몸이나 얼굴 형태를 뭉개 놓아 정확히 어떤 행사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도열해 있는지 정보 가늠이 어렵다. “거짓도 화려하게 꾸며놓으면 진짜 뉴스처럼 소비되는 요즘 세태를 표현했어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밝지 않다. 형체를 모호하게 흐리고 흑백 위주로 아련하게 표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왔다. 작가가 “등굣길 풍경을 보면 멀게 느껴진다. 마치 우리의 꿈이 아련하게 멀어지는 것처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작가 김민정이 이수아와 3인전을 여는 정지윤 전시는 아트클럽 삼덕(대구 중구 공평로8길 14-7 )에서 내달 5일까지. 010-4354-101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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