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와 순종, 달성공원에 ‘일본의 혼’을 심다
이토와 순종, 달성공원에 ‘일본의 혼’을 심다
  • 승인 2019.04.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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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정신세계 정벌 목적
거금 들여 달성공원 정비 후
가이즈카 향나무 1호 식재
이후 우리나라 전역에 퍼뜨려
학교 교목 향나무가 많은 이유
과거 대구신사 계단입구 부분
150년 이상 된 노거수 2그루
신택리지-향나무
이대영 소장이 그린 달성공원 향나무. 순종황제, 이토 조선총독부통감, 이완용 내각총리대신, 박중량 경상관찰사 겸 대구군수 등 4인이 기념식수한 가이즈카 향나무의 현재 상태를 스케치.

 

이대영의 신 대구 택리지 - (17)일본인들의 달성벚꽃신국-2


요시노산(吉野山)의 벚꽃 뿐만 아니라, 같은 산에 자생하고 있었던 가이즈카 향나무(貝塚息吹)를 동시에 심었다.

고대 일본 신무천왕의 팔광일우(八紘一宇)라는 화혼(和魂)을 ‘죽은 조선의 시체에 불러넣자(借屍還魂)’전략이었다. 겉으로 제시하는 미명은 정미년 프로젝트(丁未の役)였다. 그들이 이렇게 꼭꼭 감추었던 건 일본거류민단과 달성공원기성회등이 1592년 분로크노에키(文祿の役)를 재현하는 출병경로와 의식절차였다. i) 오사카성 천수각(天守閣,てんしゅ)에서 열린 풍신수길(豊信秀吉)의 수명식(受命式) 분로크노에키(壬辰倭亂)를 대신해 정한완수(征韓完遂)를 목적으로 요시노(吉野), 가이즈카(貝塚) 및 노무라(野村) 3대 선봉장(先鋒將)은 조선인의 정신세계를 정벌해 팔굉일우를 심어서 황국신민, 오족협화 및 대동아공영을 전개하라. 한 마디로 죽은 조선의 시체에 일본의 혼을 심는 것(滅朝還和)이라는 요지였다. 또 다른 하나는 ii) 오사카항(大阪港)에서는 출정식(出征式)을 그리고 대구읍성에서는 무혈입성의 시정식(始征式)을 했다는 거다.

1908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선총독부 통감이 달성공원의 조경을 보고 감탄해 기금 500원을 쾌척했으며, 달성공원 벚꽃은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요시노산 사꾸라(吉野山の櫻)와 욱일승천의 가이즈카 향나무가 극치였다. 1908년11월에 달성공원 조경정비사업으로 7천500원 정도 투입했으며, 공사면적은 3만9천평 정도였다. 1909년 1월 12일 순종황제의 기념식수는 이미 기획된 것이었고, 화혼(和魂)의 팔굉일우(八紘一宇,はっこういちう)의 수종과 인수목령(人壽木齡)을 계산해서 몇 개월 전에 뿌리돌림 작업(根回す作業)을 해놓았다, 비올 때 비질하는(매사를 철저히 대비하는) 민족답게 동절결빙까지 철저히 대비했다.

곧 바로 요배전(遙拜殿)을 개축하고, 1913년 4월 3일 신무천황(神武天皇, BC 711.2.13~585.4.9)의 기일(忌日)을 축복하기 위해 대구신사 낙성식을 거행했으나, 1916년 4월 22일자로 대구신사에 대한 공식적인 인가가 조선총독부관보에 게재되었다. 1920년에 대구신사를 확대 개축했으며, 대구시장을 회장으로 하는 대구신사종영봉사회(大邱神社宗靈奉仕會)를 조직했다. 당시 기록상 신사경내는 18,704.13㎡, 건물 수 9채였다. 달성공원의 전반적 관리는 일본거류민단의 미와 조테츠(三輪如鐵), 이와세(岩瀨靜) 및 야스마스(安松熊吉)가 도맡아 했다.

최근 언론에 이슈가 되었던, 1909년 1월 1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0.16~1909.10.26)가 대구달성공원에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기념식수 1호로 심었던 가이즈카 향나무에 대한 문제다. 우리나라 전역으로 퍼졌으며, 시민단체에서 ‘조선침탈의 상징’ 가이즈카 향나무(カイヅカビャクツン)를 사적지에 심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5년 국회사무처에서는 123 그루 전체 이식에 20억 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광복절(光復節)을 앞두고 밝혔고 시민단체와 문화재 제자리 찾기를 전개했다. 5그루가 국회의사당 내에 있다고 국회 예산결산심사소위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2014년에 국회는 현충원 내 가이즈카 향나무(カイヅカビャクツン)와 노무라단풍(野村紅葉, のむらもみじ) 등 일본수종 제거에 예산 30억 원을 배정했다. 아직까지도 가이즈카 향나무(龍柏)가 학교의 교목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학부모 혹은 지역주민들의 반감이 대단하다.

계명대학교 김종원 교수와 이정아 박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정신문화연구’ 2018년 6월호에 ‘대구달성(大邱達城) 일제감정기의 가이즈카향나무의 실체 : 대구달성 사적지의 노거수 2 그루를 사례로’를 게재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주요언론에서 ‘가이즈카 향나무는 향나무 일종, 일본특산종 아냐’등의 보도를 내놓았고, 일본 언론도 이를 받아서 중계 보도했다.

김종원 교수와 이정아 박사의 논문을 요약하면, i) 가이즈카이케(貝塚伊吹)는 요코하마의 인근패총(貝塚) 유적지이나 성씨에 기인, ii) 가이즈카이케(J. chinensis var. kaizuka)는 북미와 유럽에 지점을 둔 요코하마 종묘상 목록에서 1928년 처음 등장, iii) 이전까지 가이즈카이부(이)케란 나무명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iv) 개화기 일본에서 향나무가 조경수로 적극적으로 이용되면서 생겨난 상품으로 추정, v) 일제강점기 한반도 식물 자원에 관한 숱한 기록물에는 가이즈카향나무(貝塚息吹)가 나타나지 않는다. vi) 우리나라에서 가이즈카향나무(貝塚息吹)가 조경수로 널리 알려진 시점은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많이 식재했다.

다른 한편 vii) 달성공원에 있는 가이즈카향나무(貝塚息吹)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식수한 나무라는 주장의 허점은 이토 히로부미가 가이즈카 향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는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1930년 쓴 ‘대구이야기’(大邱物語)에 있으나, 미와 조테쓰(三輪如鐵)가 1911년 펴낸 ‘조선대구일반’(朝鮮大邱一班)에는 기록이 없다. viii) 기념식수일이라는 1월 12일은 혹한기였는데, 뿌리가 상한 채 새로운 곳에 이식된 나무는 매서운 추위에 노출되면 필연적으로 고사한다는 사실로 봐서 허구다.

◇달성공원의 가이즈카 향나무(貝塚息吹)의 식재와 현황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달성공원 관련 모든 서류를 소각 처리하도록 지시가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압박받았던 시민들은 속 시원했을 것이고, 이런 반일감정에서 조선인 관리인들도 소각처리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달성공원에 식재된 수목은 대부분 1960년대 이후에 재작성 된 것이다. 최근에 식재된 것만이 정확한 식재일자(植栽日字), 수종(樹種), 수고(樹高), 흉고(胸高), 가격 등을 ‘임목죽대장(林木竹臺帳)’에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의 기념식수 등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수목의 수고와 흉고를 실측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현재의 가이즈카 향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현황을 살펴보면 입구를 중심으로 동서 양측 언덕바지에 50~60년생 가이즈카향나무가 100여 그루씩 생육하고 있고, 입구에서 145m 경내중앙에 수술을 받아서 수세가 빈약한 참느릅나무(Ulmus parvifolia Jacq) 노거수(수령 200년 이상)가 있다. 과거 대구신사로 올라가던 계단입구 부분에는 가이즈카 향나무 2그루가 수세가 양호하게 자라고 있다. 김종원 교수의 실측(논문)에 따르면 흉고(胸高) 직경은 3.2~3.6m, 근원경(근원경)은 3.1~3.5m이며 수고(樹高)는 7.8~8.2m, 수관(樹冠)은 13.9m와 15.6m로 옛 군왕의 일산(일산)을 펼친 모양이다. 나무의 용트림(螺絲形)이나 비닐모양(鱗形)의 잎, 열매 등을 봐서 가이즈카 향나무가 틀림없다. 같은 종류의 2그루가 20미터 간격으로 뒤에 떨어져 식재되고 있다. 앞 노거수(老巨樹) 2그루의 수령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15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노거수 2그루가 바로 1909년 1월 21일 순종황제와 이토 총감이 기념식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나무다. 당시 순종(純宗)은 33세, 이토(伊藤)는 66세를 감안해서 수령이 비슷한 걸 선별해서 심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쯤은 110년(2019년-1909년)에다가 식수자의 보령(寶齡)을 더하면 143세와 176세로 봐서 당시 나무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기념식수를 할 때에 존귀하신 분의 보령에 맞춰서 수목을 선택하는 인수수령동격(人壽樹齡同格)사상에서 조선국왕과 조선총독부 통감의 기념식수인데 반드시 그렇게 챙겼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령을 측정하는 방안으로 i) 임목죽대장(林木竹臺帳)에 구입 혹은 식재연도를 계산하는 기록에 의한 방법, ii) 나무를 잘라서 나이테를 육안(顯微鏡)으로 세는 방법, iii) 줄기중심으로 목편을 내어서 나이테를 세는 생장추(increment borer)에 의한 방안, iv) 지절(枝節)을 보고 짐작하는 방법, v) 흉고직경(胸高直徑)에 의한 방법이 있다. 이번 노거수의 나무의 가슴둘레의 지름으로 측정해 보니 150~180년 정도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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