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끔찍하다. 하지만 문명 속에 내재하는 것이고, 선한 자를 구하고 악을 쳐부순다는 좋은 목적을 위해 수행된다면 반드시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이라 할 수 없다.”
-빅터 D. 핸슨 ‘전쟁의 가을’
VICE는 범죄, 악과 악행, 폐습, 대리자란 뜻을 갖는다. 이 모든 의미가 동시에 적용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악마의 자식일까, 아니면 전지자일까. 아담 맥케이가 연출한 ‘바이스’는 부시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를 전면에 내세워 미국제국주의를 탐사한다. 와이오밍 전봇대설치공이 의회와 백악관을 거쳐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출발과 성취와 귀환에 이르는 경이로운 인생사가 펼쳐진다. 영화는 신화적 영웅의 표준 궤도를 이행해온 할리우드 관습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감독이 포착한 딕 체니의 인생은 베트남전 이후 미국 정치사에 대한 알레고리다.
닉슨 행정부 이후 급부상한 딕 체니의 동물적 욕구와 전투력은 놀랍다. 만약 ‘바이스’를 보고 트로이전쟁 직전 아가멤논 진영을 묘사했다고 느꼈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딕 체니가 추종하는 역사학자 핸슨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군사문화의 뿌리를 기원전 그리스 시대에서 찾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가 공표했듯 딕 체니를 지배한 사상의 근원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베트남을 넘어 오스만트루크의 벌판과 동로마를 지나 트로이 해변까지 진출해야한다. 맥케이는 핸슨을 경유해 딕 체니와 만난 것이다.
테러로 자국이 당한 희생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적이고 끔찍한 살육을 ‘공정하다’고 자위하는 태도. 그리스에서 유래한 윤리관을 지닌 미국인이 어떻게 살기 띤 분노를 일으키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종반 딕 체니는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강변한다. 당신들이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건 내 덕분이니, 내게 감사해야한다고. 이 시퀀스는 문명과 역사가 서양인들을 살육장에서 더 능숙하게 만들었다는 핸슨의 주장과 무섭도록 일치한다. 심지어 제국주의자 도널드 럼즈펠드는(한 때 그는 딕 체니의 상관이었다.) 국방장관에 취임하자마자 고대의 제국들이 어떻게 패권을 유지했는지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고대의 제국들이 어떻게 오만하게 굴다가 몰락했는지를 연구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딕 체니의 전횡은 군사적으로 승리했으나 정치적으로 패배한 W.부시 행정부가 퇴진하면서 막을 내린다. 장구하게 흘러간 한 인물의 역사가 종지부 찍을 때 즈음, 암투와 협잡과 무소불위 권력이 가슴을 억누르고 머리를 어지럽힐 즈음, 영화는 시원한 소나기 뿌리는 순간을 준비한다.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벅찬 기대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장면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나폴레옹에 관해 던진 질문,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도자인가, 아니면 무리 중 선두에 선 자에 지나지 않는가’ 이 명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백정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