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의 말' 시대의 증언자, 마지막 고백
'프리모 레비의 말' 시대의 증언자, 마지막 고백
  • 김광재
  • 승인 2019.04.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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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환 후
마지막 인터뷰 책으로 엮어
AA093551
 

 

프리모 레비의 말_표지
프리모 레비, 조반니 테시오 지음
이현경 옮김/ 마음산책 펴냄
2019/232쪽/16,000원

테시오는 사소한 기억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차근차근 질문을 한다. 레비는 눈곱만큼의 과장이나 미화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고 냉정하게 대답을 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며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의 작가 프리모 레비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런 분위기로 이어진다. 이 인터뷰를 정리한 ‘프리모 레비의 말’(2019 마음산책)은 어린 시절, 친척들, 학교 선생님들, 친구들, 독서, 취미 등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프리모 레비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라면,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따분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겠다.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그 자체로 흥미롭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삶과 글에서 감명을 받은 독자들이라면, 그의 죽음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낀 독자들이라면 이 마지막 인터뷰의 묘한 긴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는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별로 자각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파시스트 정부의 인종법과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험이 그를 유대인으로 만든 셈이다. 1941년 토리노 대학교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인종법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반파시스트 조직 ‘정의와 자유’에 가담했다.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된 그는 1944년 2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됐으며, 왼쪽 팔뚝에 174517 문신이 새겨졌다. 11개월을 수용소에서 보낸 뒤 1945년 1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다.

1947년 아우슈비츠의 삶을 기록한 첫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출간한 이후, ‘휴전(1963)’, ‘주기율표(1975)’, ‘멍키스패너』(1978)’,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 등을 발표해 했다. 세계적인 작가로 증언자로 살앗가던 그는 1987년 4월 11일, 아파트 4층 층계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조반니 테시오 (Giovanni Tesio, 1946~ )는 프리모 레비와는 마지막 10여 년을 가까이 지내며 우정과 조언을 나눈 문헌학자, 문학평론가이다. 그의 제안으로 프리모 레비의 ‘승인된 자서전’을 함께 저술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1987년 1, 2월에 세 차례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다음 인터뷰가 예정된 상황에서 돌연 프리모 레비가 자살한 것이다. 가장 믿을 만한 증언자이며 야만에서 살아 돌아온 승리자로 여겨졌던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그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수용소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에 대해서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테시오와의 인터뷰 분위기는 그가 몇 달 전 미국의 작가 필립 로스와 가진 대담 때와는 사뭇 다르다.(이 대담은 1986년 ‘뉴욕타임즈 북리뷰’에 필립 로스가 정리해 발표했고, ‘주기율표(2007 돌베게)’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로스와의 대담에서 레비는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고 당당하며 적극적인 태도로 대답을 하는데, 테시오와의 인터뷰는 때때로 회피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며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아마도 이 인터뷰가 ‘승인된 자서전’을 위한 자료수집의 성격을 가진 것이어서, 자신의 말에 매우 엄격한 태도였을 것이다. 그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만 덮어두라’고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계속 듣는 것 같다.

이 책을 옮긴 이현경 번역가는 “테시오는 레비가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면 마치 그때까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한 듯 오래 그 기억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 어떤 기억들은 꺼내기를 주저하고 이야기를 망설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고통과 죄책감을 생생하게 느끼는 듯했다고 한다.”라고 인터뷰 할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결정적인 장면은 테시오가 “가끔 당신의 작품에서 (……) 마치 더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종의 장벽 같은 게 존재하는 듯 해요.”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레비는 “그 너머로 가고 깊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테시오가 다시 그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체포될 당시의 기억을 얘기하고는, 함께 체포된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에 대해 느낀 죄책감을 고백한다.

이 사건은 레비에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았겠지만, 테시오가 말한 ‘장벽’은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체포당한 뒤 자신이 유대인이라 밝힌 사실에 대해서도 왜 그랬는지를 고통스럽게 떠올린다. 그는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해서도 잘못, 실수라고 평가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여기에 더해 프리모 레비는 자신에게 치유제가 됐던 글쓰기에 대해서도 어떤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 “처음부터 당신에게 말했지요. 번역되어야 할 고백들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글과 말에 숨겨진 부분, 비틀린 부분,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이 인터뷰가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레비는 어느 친구가 자신에게 한 말을 들려준다. “아우슈비츠 이전과 이후의 자네 기억은 흑백이야. 아우슈비츠와 귀향 여행은 총천연색이지.” 그는 이 말에 동감을 표한다. 아우슈비츠의 경험이 프리모 레비가 그 이전에 대한 기억과 그 이후의 삶을 재구성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사실들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여과된 사실”이었다고 고백하고, 여러 차례 강연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더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차츰 수정돼 갔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이렇게 극한까지 밀고 가려는 프리모 레비의 용기가 그를 가장 신뢰할만한 시대의 증언자로 서게 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고백이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각자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조반니 테시오가 말한 ‘장벽’은 프리모 레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 쪽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리모 레비의 말’을 읽기 전에 먼저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또 우리나라에 프리모 레비를 소개한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교수가 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2006 창비)는 더욱 깊이 있는 이해로 독자를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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