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사랑
황혼의 사랑
  • 승인 2019.04.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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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교육학 박사, 리스토리 결혼정보 대표)
일흔 나이에 사랑이 찾아왔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묘한 설렘 속에 가슴이 뛰고 있는 그의 눈빛을 단숨에 읽어 낼 수 있었다. 미래에는 로봇과 결혼하는 시대가 온다는 타이틀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현대인들은 사회적인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곤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순간 더 짙은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과 똑같은 흉내를 내는 로봇에게 의미를 부여한 사랑을 느낀다. 인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을 한다. 20대의 사랑이 용광로처럼 활활 끓어오르는 불타는 사랑이라면 중년의 사랑은 은근하고 달콤한 와인 같은 숙성된 사랑이 아닐까. 황혼의 사랑은 한지에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 서산에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으면 따스한 체온에 감동이 느껴지는 만추(晩秋) 같은 사랑.

블랙커피의 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일주일 전에 만난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노신사와 마주 앉아 나는 그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는 멋과 품격을 갖춘 분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 받고 나이와 상관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도 잘 성장하여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부부간의 성격차이로 늦은 나이에 헤어졌다. 그는 지금까지 아내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무미건조한 삶이 가슴을 짓눌러 나머지 인생이라도 자신의 삶을 살기를 원했다. 자식들의 동의하에 부부는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제 누군가를 만나면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인연이 나타난 것이다. 동생의 적극적인 권유로 회원가입을 하게 된 여성은 50대 후반의 단아하고 분위기 있는 여성이었다. 미대를 나와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진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같은 천주교 신자에 취미가 비슷하고 그의 사회적인 위치나 인품이 여성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그의 첫인상을 일흔의 노신사가 아닌 중년의 건장하고 멋진 남성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사흘 연속으로 긴 시간을 데이트하면서 서로를 탐색했다.

새 연인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볼수록 예쁘고 착한 분입니다. 배려심도 깊고 서로 취미도 비슷해서 정말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청혼하는 조건으로 담배를 끊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느낌이 오는데, 굳이 오래 시간을 끌고 싶지 않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프러포즈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지금 딸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는데, 고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을 먼저 가고 난 후를 생각해서 앞으로 개인연금도 더 저축할 것입니다.” 그는 그런 아름다운 여성을 소개해준 회사에 무척 감사하고 신뢰와 믿음이 간다며 좋은 결실이 맺어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당부를 했다.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더 뜨겁고 절실해 보였다. 어쩌면 그에게 온 마지막 사랑인지도 모른다.

이틀이 지난 뒤 그에게 전화가 왔다. 곧 여성의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며, 자녀들에게도 사실을 알리고 흔쾌히 아버지 뜻을 따라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탁했다. 청혼 프러포즈를 우리 매니저들의 축복을 받으며 사무실에 와서 하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 그의 행동에 여성은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을까.

전 남편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 전 아내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늦게나마 맞는 인연을 만나서 두 사람은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해도 아름답지만 지는 석양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인내하며 견뎌온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여느 청춘 못지 않은 황혼의 사랑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있는 그들을 위한 축하 케이크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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