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얽매여 있는 것을 제거한다(去尤)
마음에 얽매여 있는 것을 제거한다(去尤)
  • 승인 2019.04.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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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전 중리초등 교장)
“선생님, 고전읽기 경시대회용 책값 받은 것 잃어버렸어요.”하고 학급회장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1970년대에는 초등학교에서 ‘고전읽기 경시대회’가 있었다. 가난하던 시절이라 학교마다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은 항상 개인이 사야만했다. 필자가 근무하던 시골엔 서점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돈을 거둬서 조금 큰 읍내에 책을 사러 가야만 했다.

며칠간 학급회장이 고전읽기 경시대회용 책값을 거뒀다. 그런데 학급회장이 그 책값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필자도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띵하였다.

그날 하루 종일 야단법석을 떨었다. 학급의 전체 아이들에겐 눈을 감겨놓고 돈을 가져간 사람은 내어 놓으라고 야단치기도 하였다. 또 아이들과 함께 교실구석구석을 머리를 참빗질하듯 훑어 찾기도 하였다. 우울한 하루였다.

그 사건은 저녁이 되어 해결되었다. 학급회장이 집에 가서 책상서랍을 열어보니 그 곳에 돈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담임의 하숙집에 찾아왔다. 사실 필자는 그 때 한 아이를 크게 의심하고 있었던 터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그 사람은 이웃집 청년을 의심하였다. 그 청년의 걸음걸이를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것 같았고, 말하는 것도 평소와는 달리 도끼를 훔쳐간 것처럼 보였다. 오후가 되어 청년의 안색을 살펴보아도 무언가에 쫓기는 모습이 도끼를 훔쳐간 듯 해쓱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사람은 산에 나무를 하려고 지게를 지고 올라갔다. 며칠 전 그 장소에 갔더니 무언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자기가 애타게 찾던 도끼였다. 무척이나 기뻤다.

즉시 집에 와서 이웃집 청년을 살펴보았더니, 청년의 말하는 모습과 태도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청년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변한 것을 알았다. 변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사를 ‘절부지의(竊斧之疑)’라 한다.

‘거우(去尤)’라는 말이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온다. ‘마음에 얽매여 있는 것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음 한 구석에 쓸데없이 얽매여 있는 말 못할 무엇인가를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거우(去尤)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가 변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을 때 부질없이 얽매여 쓸데없는 의심을 하게 된다. 별 이해 관계가 없는데도 괜히 짜증을 내고 그 말에 얽매여 있어 일을 어그러지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좋아함과 싫어함의 두 가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을 호불호(好不好)라 한다. 왼쪽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은 절대 오른쪽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남쪽 방향을 등지고 북쪽을 향한 사람은 절대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지 않는다.

모두 마음에 존재하는 얽매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얽매임의 심함은 정치인들에게 유독 많다. 자기의 주장을 지켜야한다는 자만심 때문이다. 잘못이라고 인정될 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자신감의 자존심이 필요하다. 자존감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품위가 지켜진다.

공자의 제자 공석애(公晳哀)는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다. 그는 군자의 도리는 복록을 받는데 있지 않고 옳음을 따르는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절개를 굽히고 않고 평생 수행에 몰두했던 제자였다.

그 공석애가 주나라의 왕을 찾아가 갑옷을 만드는데 그냥 명주실보다는 땋은 명주실로 꿰매는 것이 더 견고함을 아뢰었다. 공석애는 집에 돌아와서 명주실을 땋기 시작하였다. 땋은 명주실의 튼튼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주위의 신하들은 왕에게 공석애가 자기의 땋은 명주실을 팔기 위해 꾸민 계책이라고 비방하고 헐뜯기 시작하였다. 왕은 공석애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 의심은 마음에 얽매여 있는 것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노나라에 상돌이 부자가 살았다. 아버지가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돌아와 “세상에 상돌이보다 잘 생긴 아이는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상돌이보다 못생긴 사람은 없는데도 말이다.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들인 상돌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얽매임이 잘못 인식되었기 때문일 듯하다.

요즘 ‘상돌이 부자’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마음에 부질없는 혹 같은 얽매임을 없애야 한다. ‘기즉변야(己則變也)’하라. ‘내가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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