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주먹
법보다 주먹
  • 승인 2019.04.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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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세상을 성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단정을 지어서 타인을 모함하는 사람을 ‘경솔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경솔한 사람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오지랖이 넓다는 점이다. 유달리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호기심도 남다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순간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특히 흥미로운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과거와는 달리 해명할 사람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해명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억울하기 그지없지만,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묘수도 없다. 유일한 희망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만큼,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라는 속담이 있다. 물론 오해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만한 처신이 어디 있겠냐만, 살아가는 일이 어디 그런가. 본의 아니게 오비이락(烏飛梨落)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국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으로부터 대부분 자유로울 수 없다. 직장이나 교육기관 등을 비롯한 정치판에서도 예외는 없다.

지난 25일,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원하지도 않는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정시 출퇴근도 어려운 고액연봉의 바쁜 ‘일꾼’들이 온 몸을 불사르며 보여준, 그들만의 충격적인 전투는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생방송으로 중계를 여과 없이 해주었다면, 총선에서 판단하기 용이했을 텐데 아쉽다. 먼저 패스트트랙의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자유한국당(이하‘한국당’)의원들은 예상되는 회의장 3곳을 점거했다.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소속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맞서, 세 차례나 몸싸움을 벌였다. 26일 새벽에는 잠긴 문을 열기 위해서 소위 빠루(노루발못뽑이)와 망치까지 동원되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문을, 누구의 뜻으로 잠그고, 누구의 뜻으로 부순건지 알 수 없다. 결국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에 올릴 4건의 법안 중, 마지막 남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발의를 ‘전자입법발의시스템’으로 완료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초유의 국회 폭력사태의 전말은 이렇듯 역동적이고 점잖지못한 과정을 거쳤다.

법안을 접수하려는 민주당과 이를 막으려는 한국당의 첫 충돌이 시작된 국회 본청 7층 의안과 문은 군데군데 패이고 부서졌다고 한다. 우리들의 국회의사당을 누구의 명(命)으로 그들은 그리 파손했는가. 시설물 복구의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의 목숨과 명분만을 중시했던 관행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의원들의 행태에 분노를 넘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꼼수중단’, ‘재판거래’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궁금하다. 어떤 꼼수와 거래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알고 싶다. 민주당이 한국당과의 몸싸움에서 ‘이러면 징역 5년 이상인 거 아냐’고 하니 ‘징역 50년도 살 수 있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고소와 고발이 잦은 현직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5년 이상 징역을 살게 할 수 있으며, 50년 이상을 징역에 처하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지 말이다.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인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과 사면이 반복되어 왔다. 사면을 위한 보복인지, 보복을 위한 사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정당들 간의 물밑거래일뿐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의 사태를 촬영한 영상 등을 근거로 나경원 원내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의원 18명을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한다. 서로가 고발을 하건 말건, 생업을 버텨내기도 힘든 국민들은 이미 지쳐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한편, 작년에 비해서 38개의 생필품 중에서 세탁세재와 생수 등 21개 품목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심지어 5월부터는 소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소주가격조차도 6%이상 인상된다고 한다. 국민들의 하루하루는 이렇듯 치열하게 생존을 위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지금 뭐하는 짓들인가. 굳이 저지하고 싶다면, 차라리 생필품의 가격과 세비 인상을 저지하라. 의원들의 세비인상에는 그렇게 단합이 잘 되던 국회가 어찌 이리 옳고 그름의 변별력이 떨어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민들에게는 똑똑한 일꾼보다 부지런하고 착한 일꾼이 필요하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인물’보다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일’하는 사람을 국민들은 원한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정문에 ‘지혜롭고 착하며 건강한 어린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반드시 지혜롭고 착한 어른이 건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애만도 못한 국회의원들이 많은 국가에서 희망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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