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선택의 조건
[문화칼럼] 선택의 조건
  • 승인 2019.05.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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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지난 주말 저녁, 모처럼 미세먼지 없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봄날이었다. 지난 3월 수성아트피아 명품시리즈 세 번 째 공연 ‘크리스티안 짐머만’리사이틀에 이어, 이날 시리즈 네 번 째 공연 ‘소프라노 조수미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도 진작 이뤄진 매진 사례로 공연장은 조수미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관객들로 가득했다. 이날 공연 주제는 ‘Mother Dear’(사랑하는 어머니)로 정하고 병석에 누워계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 애뜻한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삶의 지혜와 사랑의 의미를 헤아립니다”며---

지난 2006년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조수미 데뷔 20주년 기념 독창회가 열렸다. 그런데 그날은 그의 아버지 장례식 날이었다. 관객과의 약속을 위해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조수미는 이날 공연 말미에 푸치니 오페라 ‘쟌니 스키키’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부른 후 관객들에게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 소식을 전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있음을 아버지도 기뻐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슬픔에 가득한 목소리로---). 그런 회한에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가득담은 노래들로 이번 음악회를 준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수미도 세월이 흘러감을 비켜 갈 수 없지만,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그 스타성은 여전했다. 그런 조수미에 대한 관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해 매진을 이루었다는 것은 공연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기쁜 일이다.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허전함도 있다. 이번 공연의 성공에 “아직도 관객의 편향성, 개발이 덜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기획팀 직원들의 독백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공감의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수미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카라얀과의 인연 때문인 듯하다. 조수미의 그간의 그 어떤 업적보다도 첫 만남에서 카라얀이 했던 “조수미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다. 이는 조수미 자신에게뿐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다” 이 한마디로 우리는 조수미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내기 시작했다. 전성기 조수미가 부르던 극한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대곡을 기대한 관객들은 이날 다소 실망 했을 수 있다. 공연 콘셉트가 모정이긴 했지만 상당히 대중적인 레퍼토리, 때로는 락 콘서트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조수미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노래하든 무조건 하트를 날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수미 같은 스타성을 가진 소프라노는 우리가 앞으로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조수미 같은 특급 스타가 아니라면 우리의 관객들은 레퍼토리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할 때도 있다.

2017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김선욱의 반주로 베이스 연광철의 리트 독창회가 열렸다. 이정도 조합이면 무조건 매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레퍼토리 선정에 있었다. 연광철은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아껴놓았던 보석 같은 곡. 슈베르트, 브람스, 볼프의 가곡 중 상대적으로 자주 연주되지 않던(한국에서)곡을 골랐다. 그런데 그런 그의 진심이, 덜 알려진 곡이라는 이유로 외면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2018 수성아트피아 보컬시리즈의 일환으로, 떠오르는 소프라노 박혜상의 독창회가 열렸다. 박혜상은 도밍고 콩쿠르에 입상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국내 모 방송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하며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잡지 ‘보그’의 표지 모델로 선정 될 만큼 빼어난 미모로 인해 젊은 학생들로 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리라 기대한 많은 관객들의 예상과 달리 박혜상은 평범(?)한 가곡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역시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앵콜로 부른 아리아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가 그것을 증명했다. 세계주요 극장에 서기 시작한 그의 기량도 레퍼토리에 민감한 한국 관객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아티스트나 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유달리 우리나라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우리 관객들은 음악을 감상함에 있어 익숙한 것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음악 뿐 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호기심, 조금의 모험심을 가져보면 훨씬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기쁨을 얻는 것처럼 음악에 대한 마음도 더 열었으면 하는 생각을 조수미 콘서트를 보며 다시 한 번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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