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할 줄 알았는데…도넛을 닮았구나
무시무시할 줄 알았는데…도넛을 닮았구나
  • 김광재
  • 승인 2019.05.02 22: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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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초 블랙홀 관측 성공…세계가 ‘들썩’
6개 대륙 전파망원경 8개 연결
‘EHT 프로젝트’로 촬영한 것
정확히는 블랙홀 그림자 찍어
경계는 4백억㎞ 조금 못미쳐
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존재
지구에서 5천500만광년 떨어져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배
M87블랙홀
이번에 관측한 M87 블랙홀.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설탕시럽이 한쪽으로 쏠린 도넛 같은 사진 한 장이 도대체 뭐라고 세계가 이렇게 들썩이는 거지? 지난달 사상 최초로 블랙홀 사진이 공개된 이후 인터넷에는 블랙홀과 관련한 글과 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쉽게 설명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사람들에겐 그게 더 어렵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개봉됐을 때에 이어 블랙홀 때문에 또 한 번 ‘문송’해진다.

블랙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스티븐 호킹(1942~2018)은 그의 마지막 강연을 이런 말로 시작했다. “때로는 사실이 허구보다 더 기이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블랙홀보다 더 이 말이 맞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블랙홀을 그저 신비롭고 기괴한 존재,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죄송할 일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답답한 지상의 사건들에서 벗어나 저 멀리 우주의 사건을 생각해보는 것은 정신건장에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블랙홀 사진? 그림자 사진?

엄밀하게 말하면 블랙홀 자체를 사진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블랙홀에서는 어떤 빛도 탈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자 인형극에서처럼 배경이 밝다면 그 배경의 빛을 사진찍음으로써 인형의 윤곽을 볼 수는 있다. 이번에 찍은 블랙홀 사진도 주변의 빛을 찍은 사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블랙홀의 그림자를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넛의 가운데 동그라미가 블랙홀의 경계선(사건의 지평선)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블랙홀 주위의 물질이나 가스가 빨려들어가며 생기는 높은 온도의 밝은 고리(강착원반)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방출하는 고에너지 플라스마(제트) 등이 블랙홀의 그림자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관측한 M87 블랙홀의 경계가 4백 억km에 조금 못 미치며, 블랙홀의 그림자의 크기는 이보다 2.5배 정도 크다고 한다. 앞서 블랙홀의 그림자 크기가 4백 억km정도이며, 블랙홀의 크기가 그보다 2.5배 작다고 잘못 발표했다 정정한 것이다. EHT 연구진이 발표한 영문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지, 외국의 과학저널 기사 중에도 그림자 크기가 4백 억km로 잘못 설명된 것들이 있다. 하지만 출근길 20km가 피곤한 사람들에게 수백억km의 차이는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블랙홀의탄생-2
블랙홀 주변 강착원반과 제트의 이미지.


◇사건의 지평선이란?

이번 블랙홀 사진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프로젝트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EHT는 전 세계에 산재한 전파망원경 8개를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영상을 포착하려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이다. 가상 망원경의 이름인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스텔라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도 좀 익숙해진 용어인데, 지평선이라는 말 탓인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블랙홀이라는 이름은 싱크대 구멍처럼 아래로 뚫린 것을 떠올리게 하지만, 캄캄해서 보이지 않는 별을 생각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블랙홀이 과거에 ‘어둑별(Dark Star)’로 불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보이지 않는 공의 표면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좋겠다. 호라이즌(지평선, 수평선)이라는 말은 가로로 그어진 상상의 직선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직선 모양을 떠올리지는 말자. 그대신 지평선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여기서는 알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는 게 좋겠다. 지평선 너머에서 연기라도 피어오른다면 불이 났겠거니 하겠지만, 블랙홀 내부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즉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모른다.

블랙홀이 있으니 그 반대로 모든 것을 내뿜는 화이트홀이 있고, 이 둘이 연결된 웜홀을 통해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그건 또 이상한 사진이 세계를 흔든 뒤에 고민해도 괜찮겠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칠 수도 있다. 부상이 두렵지 않다면 화이트홀이든, 초끈이론이든 계속 파고 들어도 좋다.

◇지구 크기의 망원경

이번에 발표된 영상은 처녀자리 은하단 중앙의 거대은하 M87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이다. 지구로부터 5천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EHT가 포착한 빛은 공룡이 멸망하고 천만년 뒤 쯤 M87을 출발한 것이다. 빛이라고 했지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아니다. 음에 비유한다면 가장 낮은 베이스 소리에 해당하는 전파를 포착해서 가시광선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EHT는 6개 대륙에 걸친 망원경 8개가 관측한 전파를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하나의 거대한 지구 크기의 망원경처럼 활용했다. 관측은 2017년 4월 5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됐는데,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의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얻었다.

이번에 관측된 블랙홀이 있는 M87 거대은하는 1990년에 우주로 쏘아올린 허블망원경에 포착된 적이 있다. 1994년 가시광선으로 관측된 M87의 중심부에서는 제트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관측되고 중심부에 태양의 24억배 되는 질량이 있다고 조사됐으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그것만으로 블랙홀의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이 기사는 ‘블랙홀의 사생활’(마샤 바투시액, 지상의 책 2017),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스티븐 호킹, 동아시아 2018), ‘블랙홀 화이트홀’(뉴턴 코리아 2008),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2012) 등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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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2019-05-12 17:39:01
평소 어렵게 느껴지던 블랙홀을 쉽게 잘 설명주어 감사 합니다.

"설탕시럽이 한쪽으로 쏠린 도넛 같은 사진"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칠 수도 있다"

과학기사에 문학적 표현이 재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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