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여인
오월의 여인
  • 승인 2019.05.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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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전 새누리교회 목사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더니 연휴, 남해에서 맞이한 오월은 정말 그렇다. 하늘이 이같이 맑을 수가 있을까? 잔디는 또 어찌 이리도 푸를까? 오색의 꽃은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바람은 하늘거리는 여인의 옷자락 같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오월의 풍광은 여인을 닮았다. 눈을 아찔하게 하고 귀를 간지럽히는 ‘여자’가 아닌, 고요한 자태로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네는 ‘여인’을 닮았다.

오월은 ‘엄마라는 여인’같다. 33세의 늦은 나이에 받은 첫 월급, 그 아들의 첫 월급을 보며 감격의 울음을 터뜨리던 엄마라는 여인. 엄마라는 여인은 ‘엄마라는 나무’가 되어 내 마음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엄마는/가지 많은 나무, 오빠의 일선 고지서/소총의 무게 절반을 오게 하여/가지에 단다./

오빠 대신/무거워 주고 싶다/……

뼈마디를 에는 섣달 어느 밤/엄마는 오빠대신 추워주고 싶다./ 그런 맘은 모두/폭풍이 된다./엄마라는 나무/바람 잘 날이 없다.”

초등학교 은사였던 시인 신현득 선생이 당시에 발표한 ‘엄마라는 나무’. 아마도 오월이었으리라. 엄마라는 여인은 문학을 좋아하던 초등학생 아들을 위해 신현득 선생에게 아들의 지도를 간청했었다. ‘엄마라는 나무’가 당선작으로 신문에 발표되며 신현득 선생의 소감이 실렸을 때 나는 그 시는 분명 내 엄마에게 바치는 헌시라고 혼자 생각했다. 엄마라는 여인은 아직까지도 내 삶의 무게 절반을 가져오게 하여 가지에 다는 ‘엄마라는 나무’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노래한 김소월은 엄마와 아울러 누나에게 칭얼댄다. 모든 남자아이에게 누나는 친밀한 칭얼거림의 대상이 된다. 남자 아이들은 엄마에게 다 풀지 못하는 칭얼거림을 그의 누나에게 풀어 놓는다. ‘엄마야 누나야’에서 김소월의 누이는 동생의 칭얼거림을 푸근함으로 품어주는 성숙한 누나인 듯 그려진다. 그런 누이를 둔 이 땅의 남자 아이들은 오월의 계절처럼 행복하다. 강변의 은빛 모래, 강변에 부는 바람은 남자 아이들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누이들의 치마를 붙들고 칭얼거리게 한다. 때는 오월인 것이다.

나보다 네 살 위인 나의 누이는 어릴 때에는 엄마같이, 사춘기일 때는 연인같이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랜 세월동안 한 번도 내게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던 내 누이는 오월의 계절만큼이나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어린 남동생의 철없음과 사춘기를 맞은 남동생의 변화무쌍한 격정을 조용하게 품어주고 다독거려 준 누이라는 여인, 오월의 남해를 걸으며 그 여인을 생각하며 행복해 했다.

그리고 오월의 남해를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는 아내라는 여인이 있다. 엄마와 누이만큼 함께 한 세월이 깊어진 아내는 오월처럼 편안하고 따뜻함을 뿜어낸다. 기대와 실망이란 가지를 쳐내고 정성들여 가꾼 단아한 나무 같은 ‘아내라는 여인’과 오월의 남해를 함께 걸었다.

오월은 한 여름처럼 너무 뜨겁지 않아서 좋다. ‘아내라는 여인’은 ‘애인이란 여자’처럼 너무 격정적이지 않아서 좋다. 애인과는 할 수 없는 얘기를 오월의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도란도란 나누었다. 그 동안의 함께 한 삶, 아이들 이야기, 고마웠던 분들, 참 서운했던 사람들, 정말 행복했던 그 시간들. 아내라는 여인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부끄러운 일도 있었지만 숨기거나 감추어야 했던 일은 아무 것도 없는 아내와의 관계는 맑은 오월의 햇살을 닮았다.

20년 간 몸 담았던 교회를 사임하고 휴가 겸 떠난 남해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여든이 넘은 소녀같은 권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점심을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여든이라는 세월은 그 분의 신앙 속에 넉넉함과 따뜻한 웃음으로 피어나고 만다. 오늘 처음 만난 아들 또래의 목사에게 ‘권사라는 여인’은 그 넉넉함과 따뜻함을 쏟아 놓는다. 성함을 좀 알려 달라며 종이를 내밀었더니 정성스럽게 이름을 적어 주신다. 여든의 연세답지 않게 글씨가 품위 있고 세련되다 칭찬했더니 ‘호호호’ 소녀처럼 즐겁게 웃어 주신다.

여인은 오월 같다. 오월 같은 여인들 덕분에 인생은 행복하다. 충분히 아름다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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