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古松에 담은 민족 기상 …소헌미술관, 고송 장국현 초대전
“뒤틀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古松에 담은 민족 기상 …소헌미술관, 고송 장국현 초대전
  • 황인옥
  • 승인 2019.05.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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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강원도 평창 소나무 900점 촬영
제왕산 태고송·설악산 암벽 대승송
신령스러운 古松, 국내 3대 폭포 선봬
사진작가-장국현-다시
지구온난화와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명종위기에 놓은 소나무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사진작가 장국현 전시가 소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12년은 사진작가 고송(古松) 장국현(77)에게 의미있는 해로 기록된다. 천년의 용트림을 간직한 한국 금강송의 가치를 세계에 알린 해이기 때문이다. 이날 전시에는 베트나 제투브오 다프네 란세르장 파리 8대학 교수, 장루이 아드방 미술비평가, 기더 마린거 파리 7대학 교수, 아루노 코다라 유니버스턴 회장, 앙드레 라키에 시테 데자르 관장 등 파리와 국내 문화예술계 인사 300여명이 전시개막식에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당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흥신 주불대사, 허경욱 OECD 대사 등도 전시회장을 찾으며 국내에서도 이슈가 됐다.

파리 전시에는 36점의 걸작 소나무 사진들이 걸렸다. 작가가 세계 최대 소나무 군락지 중 하나인 울진 소광리에 거주하며 6년간 촬영한 사진 중에서 엄선한 작품들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앞 다투어 “굽고 뒤틀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 한국 금강송”의 고고한 자태를 상찬하기에 바빴다. 특히 유명소설가이자 파리 8대학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동하는 장 루이 푸아트방 철학박사는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나무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며 “소나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한 요소와 장국현의 소나무에 대한 존경이 만든 결과”라고 칭송했다. 장국현 작가에 따르면 장루이 푸아트방은 파리 전시기간 동안 장국현을 3차례 인터뷰하고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장국현의 영적 체험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북 울진의 금강송(金剛松)은 인류의 유산입니다. 프랑스 전시에서 울진 금강송의 아름다움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보람이 컸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3년은 장국현 사진인생의 또 한 번의 전환기였다. 남은 인생을 강원도 평창 일대의 금강송을 촬영하며 보내겠다는 일대 결심을 하고, 결행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랬다. 작가는 2년간 대구 팔공산에 거주했다. 그는 매일 팔공산을 오르며 마음 비우기에 매진했다. 금강송에 영감을 받아 촬영을 시작했던 초심을 되짚던 시기였다. 운명의 사건은 팔공산 산행 8일째 되던 날 찾아왔다. 갑자기 눈앞이 훤해지는 체험을 하게 됐다. 직감적으로 ‘신의 계시’라고 단언했다. 꿈결인 듯 현실인 듯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카메라 가방을 꾸려서 강원도로 올라가라”는 신의 말씀이 들려왔다. 때마침 주변 사람들과 일체 인연을 끊고 오직 소나무를 스승 삼아 사진을 찍으며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던 때라 주저 없이 짐을 챙겨 강원도 평창으로 떠났다.

장국현이 당시를 회상하며 “‘산의 영적인 부름’을 받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가보지 않았는데 강원도의 수려한 바위와 어우러진 웅장한 소나무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제왕산평창금강송-장국현
장국현 작 ‘평창 금강송(제왕산)’

최근 소헌미술관에서 장국현 초대전이 열렸다. 3년만에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2013년 8월부터 강원도 평창에 거주하며 촬영한 강원도 금강송 사진들을 소개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제왕산 태고송, 대승폭포 암벽의 고송인 설악산 대승송, 2억 5천만년된 자연신전이 있는 두타산의 신선송 등의 금강송과 우리나라 3대 폭포인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 구룡폭포, 설악산 대승폭포 등 6년간 강원도를 누비며 촬영한 사진들이 포함됐다. “전시장 여건상 5m로 했지만 30m까지 확대 인화가능한 작품들도 있어요.”

한 작가의 사진이지만 울진 소광리 금강송과 강원도 금강송의 느낌은 확연하게 다르다. 강원도 금강송에 분출하는 생명의 기운이 유독 강하게 배어난다. 작가가 “‘신의 계시’를 받으면서 언제 어떤 환경에서 찍어야 좋은 소나무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달은 결과”라고 했다. 촬영은 해뜨기 직전에 감행된다. 소나무의 빛깔과 기운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시간대다. 이 때문에 출발시간은 항상 밤이다. 밤새 산을 오르고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해뜨기 직전까지 촬영을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친다. 이런 노력이 뒤따른 후라야 기운생동하는 소나무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 비현실성 때문에 “색을 입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시간대에 어떤 환경에서 찍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촬영한 결과”라고 잘랐다. “밤새 내린 이슬에 젖어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금강송의 색감과 기운을 담아낼 수 있어요.”
 

첩첩산중 숨어있는 금강송
5시간 산행 끝에 볼 수 있어
소멸 위기 놓인 국내 소나무
후대에 물려주는 게 내 소명

같은 장소를 수십 번 방문해도 자족하는 걸작을 얻기는 힘들다. 제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국현은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작가가 강원도 평창 인근에서 6년간 촬영한 소나무 사진이 족히 900점이 넘는데, 모두 4~5시간 산행해야 만날 수 있는 소나무들이다. 첩첩산중에 자생하는 소나무들인 점을 간과하더라도 그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 번에 성공할 경우만 가능하다. 그가 이번에도 “성령의 영감”을 언급했다. “호랑이같이 숨어있는 걸작 소나무들은 천신만고 끝에 찾아내죠.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성령의 이끌림이 있어야 가능해요.”

작가가 2018년 5월 두타산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성령이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였다. 그는 이날 경사진 큰 바위 밑에 자생하는 정이품송(正二品松)과 비슷한 노거송(老巨松)을 촬영했다. 모양새도 비슷하고 둘레와 키도 정이품송과 흡사했다. 수령은 천년을 훌쩍 넘긴 듯 보였다. 작가는 이 신목(神木)을 ‘대장송(大將松)’이라 이름 지었다. 사실 이 나무 역시 기도 후 신의 계시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영이 맑은 새벽 4시에 산속에서 1시간 기도를 하고 밖에 나가보니 비가 내렸고, 하늘을 향해 합장하고 파장을 맞추니 하늘의 계시가 내렸다”고 했다. “가본 적 없는 큰 바위가 있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영적 인도에 따라 2시간 30분 정도 올라가니 학교 운동장 5배 이상 되는 광활한 바위에 우뚝 선 키 작은 아담하게 생긴 노송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는 항상 영적 기운으로 걸작 영송을 찾아냈고, 하늘의 도움으로 걸작을 남길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사진인생 50년이다. 소나무 사진만 30년이다. 그는 지난 50년간 생활사진을 필두로 우리나라 아름다운 명산을 거쳐 천하제일의 한국 금강송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가 반백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진을 통해 그토록 담아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단호하게 “우리 민족의 표상”이라고 했다. 산과 소나무를 통해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한국인의 기상과 기운을 담아내고 싶다는 의미였다. “지구온난화와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을 알고 이 소나무들을 후대에 전해주어야 하는 사명감을 느끼고 소나무 사진을 찍어 왔어요.”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웠다고 했다. 이제 남은 꿈이 있다면 기록물보관소 및 전시장을 만들어 지금까지 촬영했던 산과 소나무 사진들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특히 강원도 평창 주민들에게 강원도 평창 소나무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했다. 작가가 강원도 평창 인근에서 발견한 소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자랑한다. 평창에는 우리나라 소나무 중 최고로 굵은 흉고 6.4m인 황제송(皇帝松)은 물론이고, 수령이 1천400년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고 수령 소나무인 천학송(天鶴松), 문화재청이 선정한 ‘천하절경’ 암벽 위에 자라는 대승송(大勝松), 천하제일의 무릉계 천하송(天下松)과 대장송(大將松) 등이 자생하고 있다. 작가는 이 다섯 그루의 소나무를 평창을 대표할 만한 영송(靈松)으로 꼽았다. “강원도 주민들조차 강원도 일대에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수많은 소나무가 자생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저는 그 기록을 평창 주민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남기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알고 혼신을 쏟고 싶어요.” 전시는 6일까지. 053-751-8089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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