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효시는 경북 영해”
“동학농민혁명 효시는 경북 영해”
  • 이진석
  • 승인 2019.05.0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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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참여시민연대 주장
전북 고창보다 23년 앞서
1871년 전국 600여명 결집
관아 점령 5일간 민권통치
1894년 전북 고부(고창)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이 이보다 23년 전인 1871년 음력 3월 10일 경북 영해부 병풍바위(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형제봉 아래)에서 각계각층 600여명이 참가해 영해동학혁명 운동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덕참여시민연대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1871년 영해부 병풍바위에서 전국의 한강이남 각도에서 600여명의 각계각층이 결집해 참가했으며 농민만이 참가했다는 근거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형제봉 정상에서 소 두 마리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횃불을 높게 들고 병풍바위에서 내려와 영해부 관아를 점령해 폭정을 일삼아 온 부사를 처형하고 관인을 탈환, 5일간 민권통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 후 경상도 각지에서 차출된 관군의 검거작전으로 100여명이 붙잡혀 처형되거나 고문으로 죽었고 가장 길게 수배됐던 인물은 민족의 지도자 최시형 선생이다.

당시 영해혁명의 지도자로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개명하기 전 최경오라는 이름으로 수배돼 1898년 강원도 원주에서 붙잡히기 전까지 갑오동학혁명에서 기포령을 발했고 제3대교주 손병희 선생을 길러냈다.

1871년 영해동학혁명은 동학의 핵심 사상인 ‘후천개벽’ 을 기치로 2대 교주 최시형을 비롯한 600여명의 동학교들이 참여한 거사였으며 이를 근거로 영해동학혁명이 재조명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영덕참여시민연대는 오는 11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지정을 맞아 ‘1871년 영해동학혁명 재조명’ 이라는 기념행사를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개최한다.

영덕=이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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