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행정 스트레스
정치·행정 스트레스
  • 승인 2019.05.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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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가슴이 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세먼지 때문도 아닌 것 같은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 자가진단해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공직에서 또 가르치는 일로 평생을 보냈지만 지금처럼 자기 혼란에 빠진 일이 없었다. TV 뉴스도 보지 않고 신문도 안 본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세상변화에 따라가면 속 편하겠지만 뭔가 찜찜한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변화는 나라의 정치·행정·경제·외교 등 등 여러 체제가 인위적으로 작동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상치 못한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갈등하는 자신이 안쓰럽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한 ‘행정학 원론’이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져 내게 배운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그 틈이 너무 커서 하는 말이다.

문재인 정권 만 2년 동안 각 분야에서 숱한 변화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쇄신을 강조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위적 변화는 그 끝이 어딘지 가늠이 안 된다. 삼권분립의 경계를 허무는 일도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국가라는 큰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단이 동원된다. 조직관리의 주체는 사람이므로 필요한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선거전에서 승리한 측이 관직을 차지하는 케케묵은 엽관주의·정실주의 인사행정이 나라 전 조직에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행정학 전공 학생들에게는 실적주의 인사제도가 민주적이라고 가르쳤었다. 조직이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면 참모조직과 계선조직이 제 기능을 잘해 가면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권에서는 참모조직이 계선조직이 해야 할 집행권까지 장악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의 모든 직원은 참모조직의 일원으로 대통령의 정책을 보좌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정부조직에 대해 직접 지시하는 월권을 보인다. 행정학 이론서에는 참모와 계선이 경쟁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양자의 역할과 기능을 구별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이 민주적인 정책결정을 한다는 명분을 앞 세워 각종 위원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원회의 구성단계부터 권력자의 힘이 들어가고 위원회의 결정을 빌미로 의도된 계획을 관철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 위원회가 명목상 합의제로 운영되는 민주적 조직이라고 하면서 비민주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정부 여러 조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조금 다른 의미가 있지만 지금 유행하고 있는 청와대 청원제 역시 민주적 국민의견 수렴 장치라고 하지만 정부의 의도가 다분히 실려 있는 것이다. 권력자는 어떤 경우라도 자기의 정치철학과 이념을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며칠 전 문 대통령이 사회원로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일이 있었다. 국정운영에 경험이 많은 원로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원로들을 초청한 것은 국민 누구나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국정책임자로서 썩 잘한 일이라고들 생각하고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하면 대통령이 보인 행태가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원로들에게 자기 생각을 재확인시키면서 설득하는 인상을 보인 것은 민주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사람이나 조직은 상반된 이념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나라발전을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정치력이다. 지금처럼 국민들이나 조직이 패 갈린 적은 없었다.

가끔은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과 또 다른 국민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대통령의 정치이념을 나라 전 체제에 접목하면서 실현하려면 많은 장애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정치이념에 따라 국가체제를 바꾸고 정책을 만든다는 생각은 자제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힘이 막강하지만 분명히 그 한계점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각을 한데 모으는 국민형성이 절대 필요하다. 원로들을 모아놓고 대통령이 한 말을 되씹어 본다. “종북 좌파라는 말이 어느 개인에 대해 위협적인 말이 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정파에 대해 위협적 프레임이 되지 않는 세상만 돼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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