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벗고 간결하게…동양美 꽃피다
화려함 벗고 간결하게…동양美 꽃피다
  • 황인옥
  • 승인 2019.05.08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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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미展 내달 4~9일 수성아트피아
비움·절제… 동양적 정신성 투영
간결한 선·넉넉한 여백·색감은 다운
‘사인 대신 낙관’ 바뀐 세계관 강조
권유미-작
권유미 작.
 
2019-0023
권유미 작.
 
2019-012
권유미 작.



꽃만큼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드물다. 화가들의 꽃에 대한 환호는 동서고금을 초월한다. 동양에서는 문인화, 서양에서는 정물화나 풍경화에 꽃을 그렸다. 서양은 자연그대로의 극사실화를, 동양은 심상 속 관념화를 추구한 차이만 있을 뿐 꽃이 인간을 매료시킨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꽃 작가 권유미가 꽃을 그린 배후에도 인간이 꽃에 투영한 환호가 자리한다. “어린시절부터 꽃에 매료됐고, 화가가 되자 자연스럽게 꽃을 그리게 됐어요.”

권유미 하면 ‘꽃’이다. 꽃 작가로 통칭될 만큼 10년 넘는 세월을 꽃만 그렸다. 긴 시간 그토록 꽃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화려함에 단초가 있다. 화려함의 전령사인 ‘꽃’과 ‘자개로 장식한 화병’, 화병 주변에 병치한 ‘찻잔’과 ‘주전자’ 등에서 화려함이 증폭되고 있다. 작가가 “화려함과 기원의 마음은 비례한다”고 했다. 화려함이 작품에서 메시지를 강화화는 기제라는 것. 작가는 물질적인 풍요나 정서적인 평안에 대한 기원을 꽃이나 기물의 화려함으로 드러내 왔다.

“꽃의 화려함이 극대화 되는 순간이 곧 풍요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서 꽃이 가장 화려한 순간이 꽃병에 꽂히는 시점을 그렸어요.”

2000년대 초반은 민화적인 요소가 강했다. 모델링페이스트를 캔버스에 얇게 깔고 마르기전에 나이프로 스케치를 했다. 그 위에 아크릴이나 오일로 엷게 올려서 선을 강하게 드러냈다. 입체보다 평면에 집중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부각했다. 2016년은 권유미 꽃의 화려함이 정점을 찍는 시기였다. 물감의 두께로 조소의 부조 느낌을 표현하며 입체감에 한껏 물을 올리고, 자개와 금박과 반짝이는 오브제를 사용하며 화려함의 극대화를 시도했다.

“시각적인 화려함과 풍요에 대한 기원적인 마음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어요.”

내달 4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전시에는 신작들이 걸린다. ‘화려한 꽃그림을 그리던 권유미 작품인가?’ 의심이 들 만큼 확연하게 달라진 작품들이다. 외적 화려함을 벗고 내적 깊이에 집중한 결과다. 가장 큰 변화는 동양화적 요소의 강화다. 내려놓기과 비워내기 등으로 동양화적 요소를 극대화하고 있다. 넉넉한 여백과 간결한 선의 균형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던 화폭의 물기를 뺐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강화한 점도 눈길을 끈다. 정점은 사인(sign)을 낙관으로 대체한 것이다. “서양의 물감으로 그렸지만 동양의 관념적 정신세계를 동양적인 구성과 기법으로 그렸다”는 작가의 의지를 낙관으로 드러냈다.

“1년에 100점이 넘는 작업을 하면서 채우기만 했던 방식에 변화가 찾아왔어요. 문득 비우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았죠. 그러자 화폭에서 절제가 시작됐죠.”

또 다른 변곡점은 화병이다. 화병이 꽃의 비중에 밀리지 않을 만큼 화병의 비중이 커졌다. 여전히 화려한 자개를 재료로 사용하지만 색감을 낮추는 방식으로 화려함을 절제한다. 비움과 채움이라는 동양의 정신성을 화병에 투영한 결과다. “이전 작품들에서 자개로 화려하게 치장한 화병이 꽃의 화려함을 강화했다면 신작들에서는 비우고 내려놓고자 하는 정신성을 화병에 투영했어요.”

캔버스가 폭발할 것 같은 풍성한 꽃들도 소담스러운 몇 가닥의 선으로 대체했다. 색상도 확 낮췄다. 화려려함이 증폭되었던 자리에 사색과 성찰이 내려앉는다. 작가가 “제가 다 보여주기보다 관람객이 여백을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했다. “꽃에 담긴 기원적인 의미는 그대로지만 화려함은 뺐어요. 시각적인 화려함보다 사색과 성찰로 얻는 풍요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달은 변화에요.”

흔히 예술가들은 창작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나 권유미에게는 창작은 고통이기보다 기쁨의 원천이었다. 캔버스 앞에 앉으면 행복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꽃을 화폭 가득 채울 때는 채우는 기쁨이 컸어요. 무엇을 그릴까 하는 고민조차 즐거운 비명이었죠.” 그러나 절제로 돌아선 신작 작업을 할 때는 좀 달랐다. 성찰하지 않으면 비워낼 수 없었고, 창작은 고통을 수반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야 채웠던 것을 비워낼 수가 있으니까요. 앞으로 성찰은 더 깊어질 것 같아요.“ 053-668-180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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