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개불알꽃·이부자식밑씻개… 민망한 이름, 일제의 소행이구나
큰개불알꽃·이부자식밑씻개… 민망한 이름, 일제의 소행이구나
  • 이대영
  • 승인 2019.05.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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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 학과도 없던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이 명칭·등재 좌지우지
대표적인 두 학자 마키노·나카이
마키노, 천박한 학명 주로 달아
1940년 ‘마키노식물도감’ 출판
그의 이름 딴 식물원 만들어지기도
나카이, 존경하는 은사 이름 넣거나
독도 식물엔 ‘다케시마’ 명칭 달아
달성공원신사설계도
미와 조테츠의 머릿속에 꽃피우고자 했던 가이즈카 신국을 재구성한 달성공원 대구신사설계도. 그림 이대영

 

이대영의 신 대구 택리지 - (19)가이즈카신국은 올 것인가-2

대구에 관한 또 한사람의 기록자로는 미와 조테츠(三輪如鐵, 출생미상~1929)가 있다.

그는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에서 출생, 1880년대에 일본에 16년간 양잠업계에 근무, 1891년에 조선정부의 양잠교사(養蠶敎師)로 초빙되었다. 곧 바로 조선 관리와 충돌해 귀국했다가, 1903년 7월 13일에 부산 도착, 9월에 대구에 와서 일본인거류민단을 결성했다.

1905년 청일전쟁 승전야영지에 대한 성역화(공원화)를 거류민단에 제안, 황태신궁 건립 제안, 달성공원기성회 및 복권추첨제 실시, 1907년 성역 정화수사업전개와 수목관리를 맡아서 하게 되었으며 대구거류 일본인들은 ‘말 한 마디로 만사를 처리한다’고 일언거사(一言居士)라고 존경의 찬사를 보냈다. 일화로 1917년 덕산동 63번지 박경원(1901~1933, 신명여고 중퇴)을 요코하마 가사하라기예학교에 추천하고 후원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비행사(2005년도 상영한 영화 ‘청연(靑燕)’의 주인공)가 되도록 했다.

그의 저서 ‘조선대구일반(朝鮮大邱一班)’은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기반으로 재작성하고, 자신의 27년간의 대구에서 경험을 가미했다. 주요내용은 i) 대구읍성철거 전후 대구시내지도, ii) 양잠과 사과의 재배전망, iii) 대구의 지세 및 기후 등을 정리했다. 1911년에 오사카(杉本梁江堂)에서 출판하고 다음해 1912년에 대구(玉村書店)에서 출판했다. 2016년 영남대학교 일본문학과 최범순(崔範洵) 교수의 번역으로 출판되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The Katsura-Taft Agreement)을 맺고 헬렌 태프트(Helen H. Taft) 부인이 동경에 만개한 사꾸라를 보고 감탄한 나머지, 1907년 일본을 다시 방문했으며, 1912년 동경도지사로부터 3천그루를 선물로 받아 심었던 것이 오늘날 워싱턴 DC를 벚꽃신국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구상을 했던 미와 조테츠(三輪如鐵)는 달성공원에다 가이즈카신국(貝塚神國)이란 청사진을 만들면서도 ‘감추면 꽃이 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기록뿐만 아니라 실토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조선황제를 볼모로 기념 식수했던 가이즈카 향나무가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청일전승기념 성역화작업, 황태신궁(皇太神宮), 순종황제와 이토(伊藤)의 기념식수, 동방요배(東方遙拜), 신사참배, 참배기념인장(stamp) 및 신탁(御神籤,おみくじ), 11개의 장명등(長明燈), 정문의 도리이(鳥居), 기념스탬프 속의 신탁의 빗(信託の櫛), 동서양측구(東西兩側丘)의 가이즈카 향나무를 통한 황국신민의 심성도야, 팔굉일우의 대동아공영을 한 치도 빈틈없이 추진했다. 이를 재구성해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는 가이즈카신국(Kaizuka God’s Land)이란 그림과 같은 점토판(목판)설계도를 만들어 봤다.(사진)

◇지하에서 웃는다! 조선식물을 등재했던 동경대 학자들이

지난해(2018년) 가을 아내와 팔거천변을 산보하는데 개울가에 있는 꽃들이 너무 예뻤다. 아내는 줄곧 꽃 이름을 남편이 잘 아는 줄로 알고 물었다. 작고 앙증맞은 꽃 이름을 묻기에 ‘며느리밑씻개’라고 했더니 “작은 가시가 많아서 며느리가 밑을 닦는다면 큰일 나겠는데, 질투심이 가득한 시어머니가 지은 모양인데...”라고 원망하는 어투였다.

이어서 또 다른 꽃을 물어서 ‘이부자식밑씻개’라고 했더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이렇게 앙증맞고 예쁜 꽃에 그렇게 저주스러운 이름을 붙었나요?” 따질 듯이 몇 차례 물었다. 이렇게 이름이 식물도감에 등록된 것은 한 마디로 우리의 못남이었다. 일제식물분류학자들이 조선(한국)에서 발견된 식물에다가 저주스러운 이름을 붙여 국제식물학회에 등재했고, 조선총독부의 감사 아래 식물도감(명휘집)을 출판했다.

◇식물분류학의 불모지 조선에 일제식물국수주의 깃발을 꽂다

1743년부터 1778년까지 식물을 연구했던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Carl Linnaeus, 1707~1778)는 자신이 직접 경작했던 1천300여 종을 분류하기 시작했으며, 린네의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 二名法)을 써서 24계 식물계통으로 종분류학(biosystematics)을 발전시켰다. 1940년부터 염색체에 의한 세포학적 특성을 고려한 분류학이 생겨났지만, 현생 생물학에선 마이어(Ernst Walter Mayr,1904~2005)가 제창한 ‘생물학적 종의 개념(The biological species concept)’을 정설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식물분류학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교 학과도 학자도 없었다. 불모지와 같은 조선식물의 등재는 일본식물학자들의 손에 의해서 표본채집, 분류, 등재 및 식물도감출판 등 종횡무진이었다.

대표적인 식물학자로는 마키노 토미타로(牧野富太郞, 1862~1957)와 나카이 다케오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 있다. 또한 동경대 출신제자들 혹은 경성제국대학 생물학 교사들이 조선식물의 명칭과 등재를 좌지우지했다. 사광이아재비, 이부자식밑씻개, 큰개불알(大犬の陰襄)꽃 등의 저주스러운 꽃 이름을 붙이는 나쁜 취미를 가졌던 학자는 마키노(牧野)다.그는 일본 고지현(高知縣) 출신으로 동경대학교 이학부에서 식물분류학을 전공하고, 1887년 ‘식물학명지(植物學名誌)’라는 전문지를 발행했다. 조선식물을 천박한 학명으로 격하시킨 학자로 1천500여종의 식물학명을 등재했으며, 1924년 ‘朝鮮植物名彙’를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발간, 1940년 ‘마키노식물도감(牧野植物圖鑑)’을 출판했다. 우리나라 언론에 이슈가 된 것은 식물표본채집에 사용하는 흡습지(吸濕紙)로 조선의 신문지를 사용했는데 조선일보, 동아일보, 부산일보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1999년에 그의 이름을 딴 기념식물원이 만들어져 40만 표본을 보관하고 있다.

조선 고유식물 527종 가운데 327종 62% 학명을 등재한 일본인 식물학자는 나카이 다케오노신(中井猛之進)이다. 그는 동경대학교 이학부 생물학과 식물분류학을 전공하고 조선총독부사업에 대한 5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조선식물에 대해서 1014년부터 1939년까지 25년간 조선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식물채집은 물론이고, 토질, 기후, 임진왜란 때 왜군전승, 민간의 습성까지도 메모했다. 선친이 도쿄 이시가와식물원(石川植物園)에 근무했기에 식물채집의 노하우를 전승받았다.

그는 학명에다가 존경하는 인물(花房義質) 혹은 은사의 이름을 넣어주었고, 독도(獨島)에서 발견한 식물은 무조건 다케시마(Takeshima)라는 명칭을 넣는 철저한 일제 식물국수주의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해방 이후까지로 이어져왔다. 그의 저서로는 1914년과 1939년에 발간한 ‘조선식물(朝鮮植物)’이 있고, 1915년과 1976년에 출판한 ‘조선삼림식물편(朝鮮森林植物編)’이 있다.

그의 제자들은 저술을 낼 때는 반드시 은사님의 감수를 받았으며, 당시 활약했던 제자로는 이시도 야츠도(石戶格勉), 모리 다메조(森爲三), 우에키 호마키(植木樹軒) 등은 은사의 함자를 식물학명에 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모리 다메조(森爲三, 1904~1962)는 동경대학교 생물학과를 나와서 1909년 우리나라 한성중학교 교사, 1925년 경성제국대학교(오늘날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다. 1922년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교사 재직 중 나카이(中井) 교수 감수(서문)로 시작하는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를 조선총독부에서 출판했다. 총 160과 833속 2천904종 그 가운데 수입식물을 51과 112속 161종의 목록으로 싣고 있다. 그는 조선의 향나무를 향나무, 누은향나무, 섬향나무, 곰향나무 등 4종으로 분류해서 식물도감에 실었다. 여기에 가이즈카 향나무(貝塚息吹)가 게재되지 않았기에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감추면 꽃이 된다”는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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