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편지를 쓰겠어요
5월엔 편지를 쓰겠어요
  • 승인 2019.05.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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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 전공 강사
5월은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를 축복해주는 날, 자식 키운 어버이나 제자 키운 스승을 감사로 돌아보는 날, 부부가 하나 됨을 기억하는 부부의 날(21일)들이 물질 만능시대에 더러는 선물 고를 일이나 용돈 챙겨줄 일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마음에 담기는 선물과 의미를 찾아보면 참으로 은혜로운 날들이다.

어린이날 즈음엔, 온 산에 철축꽃이 활활 불타오른다. 붉은 꽃 속에 아이를 앉히고 엄마, 아빠가 자기를 아름답게 키우고 있다는 마음을 사진으로 담아 주는 선물은 어떨까? 할머니인 나는 손주에게 카톡으로 넘겨봤던 사진을 골라 현상하여 ‘윤서 이야기’사진첩을 만들어 주었다.

5월 어버이 날 쯤엔, 배고픈 자식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처럼 이팝나무가 하얀 밥알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이런 날 나는 돌아가신 양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하늘에 써 보낸다. 가난이 힘겨워 함께 죽어버리자고 했던 아버지 생각도 나고, 먹을 것은 없어도 중학교에는 보내야한다는 어머니의 고집도 생각난다. 시집 와서는 고꾸라진 허리로 쌀 한 말, 나물 한 웅큼이라도 더 주고 싶어 하던 시부모님의 한결같은 자식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서 더 생각난다. 부모님께는 늘 받아만 온 사랑이 크다. 그 대가(代價)의 어느 한 부분도 갚아 드릴 수 없었다. 치매 걸린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언니가 모셨고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요양소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마지막 소원도 들어드리지 못 했으니 불효가 가슴을 친다. 이제 직을 내려놓고 시간이 여유로우니 모실 수 있건만 부모님은 자식을 기다려줄 시간이 없으셨다. 자식 둔 부모의 마음으로도 자식의 마음 담긴 편지 한 장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다. 서로 보듬어주던 추억을 사랑의 업적으로 되새겨 적어주는 편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과 며느리한테 물질적 선물보다 마음 담긴 편지나 엽서 한 장이 더없이 소중하다고 했더니 둘이서 편지지 한 장을 반쪽씩 나누어 깨알같이 적어주었다. ‘긴 편지는 윤서한테 글씨를 가르쳐 쓰게 할게요.’ 편지 쓰기 선물을 대물림까지 하려 들었다. 그래도 고마웠다. 마음 담긴 선물인지라 오래 간직할 수 있어서. 굳이 편지지를 사용해야만 하랴? ‘어버이날을 맞이 하야, 어무이, 아부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편지 쓰기 선물을 대물림할 수 없는 노총각 맏아들의 문자 한 마디도 그저 고맙기만 하다.

5월의 한 가운데 스승의 날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그즈음에 학교 울타리엔 장미꽃이 활짝 피고 우리 집 동구 밖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한다. 꽃 향기가 코끝에 진동할 때, 나는 나를 키워준 은사님들의 향기를 떠올린다. 늘 기억 속에 담겨 있지만 어디 계시는지 연락처를 모르는 선생님들께는 마음으로 쓴 편지를 아카시아 향기 속에 실어 보낸다.

내가 교단에 있을 때는, ‘스승의 날 받고 싶은 약속 선물’을 받았다. “첫째, 친구를 때리지 않겠어요. 둘째, 공부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겠어요. 짱구 올림.” 이런 선물을 받아 두었다가 짱구가 약속선물을 위반하면 그 선물 값을 물어 스스로 잘못을 고치도록 했다. 이런 편지 파일철이 24개가 되던 어느 날, 우리 시골집에 서울 손님이 왔다. 하룻밤 머물며 제자들 편지를 밤새 읽더니 감동적이라며 출판하자고 했다. ‘내 재산 제 1호로 우리 집에 불나면 제일 먼저 대피해야 할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그리고 곧 퇴임이 다가오는데 전교생에게 줄 선물이 될 수 있다면야…….’ 싶어 부랴부랴 주제 별로 추려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책을 내고, 4,5,6학년 420명에게 교장의 퇴임선물로 안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초당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편지’ 라는 단어를 보고 이 좋은 책을 우리학교 도서실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략) 전체적으로 느낀 점은 선생님이 좋은 교육 방법을 가지고 계셔서 선생님의 제자들이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는 먼 곳, 독자의 편지로도 이어져오고 있다.

부부의 날 아침에도 닳아 없어질 물질적 선물보다 가슴 속 벽장에 간직할 선물로 반려자 귀에 대고 ”여보, 늘,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 줘서 고마워요!“ 한마디 말로 속삭이는 감사편지가 좋겠고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같은 편지로 남을 선물을 해보면 좋겠다.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십년간 귀양살이 하는 남편(정약용)에게 그리움 담아 보냈던 홍씨 부인! 그의 치마에 남편은 매조도(매화와 새)를 그렸다. 그것을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200년의 세월을 떠돌다 2015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 7억 5천만원에 팔렸다는 ‘하피첩’이야기는 분명 물질적 선물을 뛰어넘은 애틋한 사랑이 거기 고여 있음이라.(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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