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동대문 평화시장 층층을 오르내리며
옷 보따리 잔뜩 떠메고 다니는 아낙들
저 보따리 속에 생계 말고도
다른 무엇 들지 않았을까
소금처럼 창백한 가난의
순결이나 절망 따위
늘 뱃속 깊이 새겨진 것이어서
이리 흥건히 젖어 살아갈 뿐
그런 것 몰라.
어느 해였던가
석유풍로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엔 옷 보따리를 든 채
어두운 골목을 빠져 나오시던
어머니, 울 엄만 서커스단, 이라며 킥킥대던
철없는 날 나무라지 않고
달빛처럼 웃으셨지
눈앞을 스쳐간 머리핀 반짝이네
다락방 창을 파고들던
그 날 달빛처럼
▷충북 진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동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내 안의 흔들림」(1999) 등이 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원. 현재 고교교사로 경기 용인시에서 창작활동.
낮과 밤을 밝히는 두 광명이 있다. 아는대로 해와 달이다. 해가 지고 다가오는 어둠을 달빛이 밝힌다. `달은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구름을 벗어난 달은 그렇게 환하고 밝다’고 팔만대장경은 적고 있다.
여기서 보는 시인의 `달빛’은 `철없는 날 나무라지 않고 / 달빛처럼 웃으셨’던 어머니 환한 웃음과 함께 어둠처럼 까맣게 잊혀 질 뻔했던 지난날을 달빛이 되밝히는 시인의 서정이 밝기만하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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