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민정음’ 시대에 사는 꼰대들
‘야민정음’ 시대에 사는 꼰대들
  • 승인 2019.05.14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삼수 서울본부장
윤삼수 서울본부장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 1995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Z세대로 분류한다. 이들을 MZ세대라 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출판한 『트랜드 MZ 2019』에 MZ 세대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꿈꾸는 아재들을 위한 특별 수업 문제가 나와 있다. 몇 개나 아는 단어인지 한번 맞춰보시라.

오놀아놈: 오우~놀줄 아는 놈인가? 갑뿐사: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만반잘부: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혼틀: 혼란을 틈타.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뽀시래기: 부스러기의 방언, 귀여움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젊은이를 중심으로 자고 일어나면 신조어가 쏟아진다. 늘 그래왔듯이 언어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진화하고 변화해왔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그 젊은 세대 언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글’은 우리나라 고유 문자의 이름이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이 태어난 지 600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요즘은 정체불명의 ‘야민정음’이 생겨났다. 야민정음은 어떤 단어의 글자들을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바꿔 쓰는 것을 말한다. 멍멍이를 모양이 비슷한 댕댕이로 표기하는 식이다.

여기에 가세해 상술이 뛰어들었다. 팔도비빔면은 괄도네넴띤을 출시했다. SNS상에서 팔도비빔면 포장지 글씨체가 괄도네넴띤 처럼 보인다는 반응에 제품명으로 사용한 것이다. 위메프는 읶메뜨라고 일리 커피머신은 귀띠머신으로, 호식이 두마리 치킨을 호식이 득마리 치귄으로 현대H몰은 PB브랜드 ‘ㄱㅊㄴ’을 선보였다. ㄱㅊㄴ는 괜찮네의 초성이다. 롯데듀티프리(LOTTE DUTY FREE)의 영어 단어 첫 글자 LDF에서D를 밑으로 내려 한글 ‘냠’으로, 이 같은 신조어마케팅이 신선한 마케팅이라는 긍정론도 있지만, 기업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한글파괴에 나선다는 점에서 비판론도 만만찮다.

상사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ㅈㄱㄴ’라고만 쓰는 밀레니얼, ㅈㄱㄴ란 제목이 곧 내용의 줄임말인 제곧내를 초성만 따서 쓰는 신조어다. 그 외에도 윾재석 차윾랑 머학교 커여워 띵곡 싀혜 등 ‘야민정음’이 범람하고 있다.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글 유희도 심상치 않다. 개꿀잼(아주 재미있다) 핵노잼(정말 재미없다) 가심비(가격대비 심리적 만족도 높은) 세젤맛(세상에서 젤 맛있는 맛)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노인들 폄하성 신조어 ‘틀딱충’(틀니+딱딱+충蟲, 벌레충) 카페인우울증(카카오 페이스북 인스타 자랑질하는 친구 때문에 우울증 생긴다는 뜻)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안물안궁(안 물어본 것과 안 궁금한 것) 코노(코인 노래방) 삼김 (YS·DJ·JP가 아니라) 삼각 김밥, 시시까까(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고)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빚투(나도 떼였다) 등.

서울 강남의 한 커피 매장에서, 친구들이 “아아, 아따, 얼죽아, 아바라”를 주문했다. 아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따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바라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 이다.

이렇듯 10-20대를 중심으로 쓰이고 있는 새로운 은어, 신조어를 ‘꼰대’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어 가정이나 직장에서 소통이 안 되고 이해하기 어렵다. 세종대왕이 오시면 통역사가 있어야 소통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너무 많이 사라졌다. 우리말의 ‘늘픔’을 기대한다.

경북 영양 출신, 조지훈 시인의 ‘낙화’를 읊으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새김 해보자.

꽃이 지기로 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산이 다가 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