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에 대하여
늙는다는 것에 대하여
  • 승인 2019.05.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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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짙게 뿜어져 나오는 아카시 꽃향기가 신선함을 더해주는 계절이다.

공원 매표소 앞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이 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무슨 일이기에 저리도 재미가 있을까. 이유인즉, 경로우대 혜택을 받아야하는 여성들에게 매표소 직원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더라고 했다. 그래, 신분증 확인이야 당연한 절차가 아니던가. 그런데 ‘젊어 보인다’는 말 한 마디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경로우대 혜택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몇 년 만이라도 젊음을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곁들이며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밝은 기분으로 공원 관람을 하게 되었으니,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을까. 온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을 그 말 한 마디가 단순한 인사치레라도 좋고, 진심이 담긴 말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은 무엇인가. 횡단보도의 신호가 깜빡거리고 있을 때, 주저 없이 뛰어갈 수 있는 용기가 젊음일까. 또는 타야할 버스가 붕붕거리며 정류장을 떠나려고 할 때, 바로 달려가 기어이 그 차를 탈 수 있는 패기가 젊음일까. 길을 걸을 때, 앞을 바라보며 어깨와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젊음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지고, 활동범위가 줄어들며, 실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주눅이 드는 것은 늙음으로 가는 신호가 아닐까.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양호해진 요즘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간세대가 폭넓게 존재하는 것 같다. 관리하기에 따라 연령은 낮으나 몸이 노쇠한 사람이 있고, 연령에 비해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도 있다. 젊음이란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다. 일흔에 비해 예순은 젊은 것이고, 아흔에 비한다면 여든 또한 젊은 것이다.

예순의 중반으로 향하는 필자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시선처리가 곤란할 때가 많다. 빈자리가 있을 때는 앉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서 있을 때가 문제다. 젊은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광고나 노선표가 있는 곳으로 눈길을 보내고는 한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자리를 양보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아직 늙지 않았음을 인정받으려는 달콤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종교지도자였던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청춘」이라는 시를 통해 ‘청춘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또한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간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고, 늙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늙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지, 슬퍼하거나 한탄할 일이 아니다. 다만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면역체계와 신체 기능에 서서히 문제가 생기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조바심으로 공연한 걱정을 껴안게 될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나이에 알맞은 취미활동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적응할 수 있는 의지와 유연성을 잃지 않는다면 훨씬 당당하고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노인인구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급속한 사회의 고령화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더불어 노인에 대한 관심과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늙는다는 것은 결코 잘못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움직임이 전과 같이 않아 약간 불편함이 있을 뿐. 조금 작고, 조금 느리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노년의 의미가 될 것이다.

젊음과 늙음의 차이는 생각하기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젊어 보인다’는 말 한 마디에 한참이나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긍정과 유연성의 표현인 것 같아, 보는 사람도 흐뭇했다. 더불어 큰 소리로 즐겁게 웃는 것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인체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니 웃지 않을 이유가 없다.

축제의 계절에 꾸밈없이 밝고 맑게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처럼 어른들의 마음에도 푸르디푸른 5월의 하늘처럼 두려움의 그늘이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조바심으로부터 벗어나 웃고 또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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