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목이 피워낸 봄매화, 볼수록 그윽하구나
노목이 피워낸 봄매화, 볼수록 그윽하구나
  • 황인옥
  • 승인 2019.05.15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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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석경 이원동展
수묵담채 매화작품 40점 선봬
화려하지 않은 작고 소박한 꽃
인고의 세월 견딘 강직함 풍겨
추상·구상 두가지 스타일 화풍
가시·非가시 병치 ‘중용’ 경지
이원동-수묵담채
이원동 작.
 
이원동-수묵담채2
이원동 작.




맵찬 공기가 대지를 감싼다. 여전히 찬 기운의 기세가 등등하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운 법. 찬공기 속에서도 숨결을 파고드는 훈풍의 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이때다!” 하며 긴 숨을 몰아쉬는 늙은 노목(老木)의 아름드리 가지에 솜털같은 매화가 팝콘처럼 팡팡 터져나온다. 몇백년의 시간이 스쳤을 검붉은 노목에 봄기운이 차려낸 매화꽃 잔치가 한창이다. 한국화가 이원동이 피워낸 홍매화다. “올해 전시 주제는 매화입니다.”

봉산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석경(石鏡) 이원동 개인전 주제는 매화(梅花). 수묵담채로 그린 매화 40여점이 걸린다. 작가는 전통문인화의 소재인 사군자로 4년간 전시를 기획했다. 지난해 첫 전시인 대나무에 이어 올해 매화를 선보인다. 전시는 200×730㎝와 140×600㎝ 등의 대작 홍매부터 100호, 50호, 30호 홍매까지 다채롭게 구성된다.

석경의 매화는 부조화에 가깝다. 나무 둥치에 비해 꽃의 크기도 작고(小), 양도 적다(少). 분명 홍매화인데 고졸(古拙)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열매 수확을 목표로 기름진 흙에서 키운 농원의 매화가 아닌 늙은 고매(古梅)가 키워낸 홍매화를 그린 결과다.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청춘의 홍매화였으면 어땠을까?” 싶어 물었더니 작가가 매화에 담아낸 상징적인 의미를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사군자 중에서 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고고하게 꽃을 피우며 봄의 문을 여는 매화의 강인한 생명력을 지조와 절개에 은유한다. “오랜 세월 온갖 풍파를 견뎌낸 노목(老木)이라야 매화의 절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지 않겠어요?”

홍매화가 화선지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탐매(探梅)와 영적 교감의 단계를 거친다. 먼저 노목을 찾고, 이후에 노목과 작가와의 영적교감을 감행한다. 이 과정이 빠지면 재료 없이 요리를 하겠다고 불앞에 서는 형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탐매와 교감의 과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이번에는 노목의 기운이 작가의 몸안에서 충천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기운을 모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영매가 찾아오면 찰나적인 일필휘지로 화선지 위에 점사(占辭)를 토해낸다. “고대에 그림은 주술행위의 일부였어요. 지금도 그런 정신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봐요. 특히 동양화에서는 찰나적 영감이 중요하죠.”

작품은 두 갈래다. 추상적인 요소가 강하거나 구상적인 요소가 강하거나. 그렇더라도 두 화풍 모두에 추상이 기본 전제로 깔린다. 작가가 “21세기를 사는 내 안에 21세기의 미의식이 깔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현대회화적인 요소의 개입을 부정하지 않았다. 관념성에 집중한 옛선비의 문인화와는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낙관을 보지 않아도 고려, 조선, 근대 중 어느 시대에 그려졌는지 알 수가 있어요. 작가의 개성이 아무리 강해도 그 시대의 미의식이 녹아들 수밖에 없어서죠. 제 그림도 그런 공식을 따르죠.”

추상미가 강한 화풍에서는 살아꿈틀대는 선들이 선방을 치고, 홍매화는 고졸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찬서리를 견디며 마침내 생명의 꽃을 피워낸 홍매화의 기개가 강렬한 선과 대비를 이루며 관념성을 강화한다. 반면에 구상이 짙은 화풍에는 매화꽃의 형상이 좀 더 농밀하게 드러난다. 대신 추상적 요소는 잔상으로 처리한다. 작가가 ‘물아일체(物我一體)’, ‘사바세계와 극락세계’를 언급했다. “잔상으로 처리한 세계는 현실세계인 사바나 물(物)의 세계를, 매화가 만발한 세상은 이상향인 극락세계나 아(我)를 의미하죠.” 구상과 추상의 병치는 현실과 극락,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의 공존을 의미한다.작가는 두 세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중용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2022년이 화업 50년이 되는 해다. 이원동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해마다 개인전을 개최한 것은 물론이고, 전시마다 새로운 화풍을 선보여 왔다. 개인전에 전작을 걸지 않았던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가 “내 작품은 내가 세상을 바라본 결과”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 영적인 깨달음도 짙어지게 마련이고, 영적 깨달음이 성장하면 화업 세계도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전시는 21일부터 26일까지. 010-7688-599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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