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월드뮤직
[문화칼럼]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월드뮤직
  • 승인 2019.05.1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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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소설을 텍스트로 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제레미 아이언스’의 지적인 연기와 리스본 거리풍경이 아름다운 이 영화에는 너무나 멋진 대사가 많다. 그러나 그 우아하고 고상한 말들은 영상과 함께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원작에서 그 말들의 향연을 즐기고자 뒤늦게 소설책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의 전개는 다른 점이 많고 영화 속의 ‘아이언스’와 달리 소설속의 ‘그레고리우스’는 우아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소설을 관통하는, 타인의 삶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보는 여정은 아름답다.

항상 정확하고 짜인 틀 속에서 생활하던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일탈(?)하게 된다. 지적 호기심에 가득한 그는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라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아마데우’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 이전 몇 년간 있었던 일들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너무나 이성적이며 고귀한 정신을 지녔으나 다소 이상주의자인 아마데우. 그의 절친 이자 동지였던 ‘호르헤(조르지)’ 그는 정의롭고 열정에 가득 찼지만 고귀함과는 거리가 있다. 이 두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은 ‘에스테파니아.’ 그녀는 너무나 영민하여 이것이 사랑인지, 사랑의 얼굴을 한 다른 감정인지 그 미묘한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세월 앞에서도 당당하고 훗날 아름다운 재회를 가질 자격이 주어짐을 이 작품은 잘 보여준다. 그레고리우스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과감한 선택으로 길을 나섰다. 그가 충동적으로 일탈한 것처럼 보이지만, 존경받는 선생이자 흔들림 없는 생활을 하던 그도 늘 진정한 자아에 대한 갈망이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소설에서는 그레고리우스가 고향 베른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여러 번 그리지만 영화에서는 안과의사 ‘마리아나’가 리스본역에서 그레고리우스를 향해 “가야만 하느냐”고 하자 흔들리는 눈빛의 아이언스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끝을 맺는다.

이 영화에서는 들을 수 없었지만 리스본, 포르투갈 하면 ‘파두’와 축구가 떠오른다. 60~70년대의 포르투갈 축구영웅 ‘에우제비오’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오랜 기간 뛰었던 벤피카 구장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조가를 불렀던 사람이 포르투갈 파두의 여신 ‘둘스 폰트스’였다. 파두의 여왕으로 불렸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파두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면 ‘둘스’는 파두를 월드뮤직의 정점으로 확립한 사람이다. 그가 부르는 ‘바다의 노래’를 듣노라면 왜 여신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인 ‘파두’는 한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다. 대항해시대 바다로 떠난 남자들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여인들의 마음이 낳은 노래라고 한다. 이것을 ‘리스본 파두’라고 부르며 반대로 ‘코임브라 파두’라고 불리는 것은 거친 세상을 지나 와도 가족을 만날 길 없는 남자들의 마음을 그린 노래다. 그들만의 애환과 서정이 노래로 굳어진 것. 이런 것이 민요이고 오늘날 ‘월드뮤직’이란 형태로 자리하면서 우리에게 와 닿게 된다.

사람들은 월드뮤직이란 장르에 대해서 다소 궁금해 하는 것 같다.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현대 대중음악.’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은 월드뮤직. 따라서 이것은 재즈, 팝, 포크와는 태생이 다르다. 이것들과의 경계선이 희미한 부분도 있지만 출발점은 분명히 다르다. 삶이 고행의 연속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현상인지라 대부분의 민요는 한이 깔려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며 형성된 그들만의 정서를 담은 민요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한 월드뮤직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작년 수성아트피아에서 첫 월드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일단은 매우 놀랐다. 그 수준이 너무 높아서. 어떤 음악은 생소함에도 가슴을 찢는 것 같았다. 그들의 애환이 여과 없이 전해져 온다. 올해 두 번째 페스티벌이 열린다. 우리의 월드뮤지션들은 대부분 국악을 베이스로 하는 연주자들이다. 작년의 경우 국악의 원형을 더 많이 가질수록 더 큰 호응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몇몇 국악인에게 역으로 제안을 했다. 우리 소리의 결을 흐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공연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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