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이 땅에만 있나?
휴전선이 땅에만 있나?
  • 승인 2019.05.15 2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5일 북위 38도선을 기점으로 남과 북이 둘로 나뉘었다. 그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3년간의 전쟁을 하면서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전쟁 동안 서로 상처가 깊게 남긴 후 1953년 7월 27일에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그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휴전선이다. 그 후 7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지척에 고향과 일가친척을 두고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를 가까이 두고도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휴전선에 가로막혀 남과 북이 만나지 못하듯 우리 삶에도 휴전선이 그어져 있다. 휴전선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휴전선이 있다. 그 휴전선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만날 수가 없다.

먼저 종교가 휴전선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누구는 하나님(개신교, 천주교)을 믿고, 누구는 부처님(불교, 원불교 등)을 믿는다. 또 누군가는 알라신(이슬람교)을 믿는다. 이 밖에 셀 수 없이 많은 신을 믿고 있고, 종교를 가지고 있다. 종교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휴전선이 되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믿는 종교 때문에, 그 사람이 믿는 종교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미리 선입견을 가지고 서로를 멀찍이서 바라볼 뿐,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종교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하고 아픈 이별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종교 때문에 싸움을 하여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이 종교전쟁인 걸 보면 종교가 우리 삶에 휴전선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휴전선은 정치적 신념이다.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타인이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우리는 만남이 어려워진다. 누가 말했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되도록 친한 사이에서는 하지 말라고. 정말 맞는 말이다. 아무리 오랜 친구라 해도 정치라는 철조망이 둘 사이에 가로 쳐지면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정치적 신념은 우리 삶에 휴전선을 그었다. 그 결과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끼리 모이고 저들은 저들끼리 모인다. 서로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며 내가 맞네, 네가 틀렸네 하면서 만나려 하지 않는다. 한쪽은 빨갱이라 말하고, 한쪽은 수구 꼴통이라 말한다. 과연 정치적 신념이 휴전선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성(性)이 휴전선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경우도 많다. 마음이 통하고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그 사람이 남자여서, 혹은 여자여서 우리는 더 다가가고 싶어도 성별의 휴전선 앞에서 멈춰 서야 한다. 나 역시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다. 같은 동성이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나와 성이 다른 여성이란 이유로 더 친해지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성(性)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휴전선이다.

또 나이가 휴전선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에 갇혀 그 나이 속에서 사람과의 만남을 제한한다. 비슷한 나이는 만남이 쉽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우리는 만남이 어려워진다. 좋은 사람이 나이라는 휴전선에 가로막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도 휴전선이다.

우리 삶에 휴전선이 너무 많다. 사는 지역이 부촌이고 빈촌이라서, 직업이 달라서 사회적 레벨을 핑계로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때론 피부 색깔이 휴전선이 되고, 때론 다니고 있는 학교가 휴전선이 되어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이제는 정말 만나고 싶다. 누구나 쉬이 넘어오고 쉬이 건너갈 수 있도록 우리 속의 휴전선을 걷어내고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 나누면서 밤새워 불가에 둘러앉아서 노래 부르고, 얼싸안고 춤을 추고 싶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