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산이 다시 푸른 옷 입는데 걸린 시간 따라…고령대가야수목원
붉은 산이 다시 푸른 옷 입는데 걸린 시간 따라…고령대가야수목원
  • 김광재
  • 승인 2019.05.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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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유역 녹화 사업 성공 기념
숲속놀이터·야생화단지·전망대…
초목 체험 할 수 있는 공간 조성
전시관서 녹화과정 영상으로 안내
일제강점기 경북林相圖 녹색 ‘찔끔’
‘송진 채취 목적’ 송탄유 가마 복원
조직적 산림자원 수탈 흔적 엿보여
고령대가야수목원-2
고령대가야수목원 산림녹화기념관.

고령 대가야읍에서 개진면 양전삼거리로 금산재를 넘어가는 도로 오른쪽에 대가야수목원이 있다. 수목원의 예전 이름은 ‘산림녹화기념숲’이었다. 2004년부터 조성에 들어가 2008년에 개장했으며, 201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명칭변경을 했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산림녹화’란 말이 생경하고, 산은 당연히 푸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 사람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산림녹화란 말을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었다. 당시 교과서에 실린 김동인의 1930년대 배경 소설 ‘붉은 산’에서는 나무 없는 ‘붉은 산’이 조선의 상징으로 나온다. 민생이 피폐해진 조선말기부터 이 땅은 산은 헐벗기 시작했을 것이다. 거기에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산림은 더욱 황폐해졌다.

광복 후 전 국민의 노력으로 산에 나무를 심고, 연탄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산은 다시 푸르러졌다. 이 수목원은 낙동강 대홍수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사방사업 3만4천㏊, 토사 방지 수종 4천100만 본을 심어 성공적으로 수행한 ‘낙동강 유역 산림녹화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또한 1946년 작업트럭을 타고 이곳 사방사업 현장 지도 출장 중 이곳 금산재에서 차량 전복으로 순직한 정무경, 최인화, 김흥갑 등 경북도 산림 공무원 세 사람을 기린다는 뜻도 담고 있다.

70㏊의 면적의 대가야수목원에는 숲속놀이터, 분수광장, 조형물광장, 분경·분재관, 암석원, 야생화단지, 대나무숲길, 미로원, 산림녹화기념관, 금산재 구름다리, 전망대, 금산인공폭포, 목재데크 숲길, 숲속교실, 잔디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또 수목원에서 금산재, 금산, 의봉산까지 숲길이 이어져 있어 가벼운 등산코스로도 좋다.
 

고령대가야수목원
고령대가야수목원에 복원해 놓은 송탄유 가마는 일제의 조직적인 산림자원 수탈을 보여준다.

분수 광장옆에는 고령군 쌍림면 국도건설공사 구간에서 발굴된 일제강점기 송탄유가마 2기를 복원해 놓았다. 송탄유는 소나무에서 추출하는 기름이다. 일제는 전쟁물자 특히 석유가 부족하게 되자 송진에서 추출한 송탄유을 사용했다. 조선총독부는 지역별로 할당량을 정해 조선인들을 송진채취에 동원했고 전국의 질 좋은 소나무들을 무차별적으로 수탈했다.

운문사 입구 송림의 고목에서 둥치에 새겨진 섬뜩한 V자형 상처를 본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일제의 송진채취 흔적이다. 오래된 소나무 숲에서는 이렇게 나무에 상처를 내어 생송진을 받아낸 흑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복원해놓은 가마는 소나무에서 직접 송진을 채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솔불을 지펴 송탄유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광장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대나무숲이 있다. 곧게 뻗어올라간 대숲 사잇길을 천천히 걸어보고, 목재 다리로 계곡을 건너가면 잔디광장과 여정목(광나무)으로 만든 미로원이 있다. 미로는 거미줄이 많아 조금 들어가보고 되돌아 나왔다.

산림녹화전시관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땀을 식힐 수 있다. 1층 산림문화전시관에서는 숲의 역할과 혜택, 산림 자원의 조성 과정, 낙동강 유역 산림의 녹화 과정 등 숲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그래픽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경상북도임상도(林相圖)를 보면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애처로울 정도로 적다. 또 ‘산림산업사진첩’에는 붉은 산의 사진들도 보인다. 현재의 지도, 사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2층에는 전국의 수석인들이 기증한 각종 수석이 전시하고 있는 수석관과 관람객들이 체험을 할 수 있는 향기체험관이 있다. 고령군기후변화교육센터가 9월까지 ‘2019년 고령군 기후·생태·환경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산림녹화전시관 2층의 둥근 교량 형태의 베란다로 나가면 회천교 건너 대가야읍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편으로는 주산 능선의 대가야 고분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에서 나와 붉은색 구름다리를 향해 올라가면 금산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바싹 말라있다. 강물을 끌어올려 물을 내려보내는 인공폭포인데 비용 때문인지 가동을 하지 않고 있다.

금산재 구름다리를 건너갔다 와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오솔길에는 하얀 아까시 꽃잎이 점점이 떨어져있다. 오른쪽 아래로 목재데크 숲길과 분경·분재관이 보이고, 수목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이 작게 들린다. 갑자기 ‘따따따따따따딱’하는 딱따구리 소리가 엇박자로 겹쳐진다. 어쩌다 리듬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딱따구리 협주곡을 들으며 광장으로 내려오니 어린이집에서 소풍나온 아이들이 분경·분재관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분재관에서 으름나무 터널을 지나 다시 조금 올라가면 바위와 꽃들이 어우러진 정원인 암석원에 닿는다.

자줏빛 꽃이 지고 하얀 씨앗이 솜처럼 달린 할미꽃이 가득했다. 할미꽃은 씨앗을 멀리 날려보내려고 꼬부라졌던 꽃대를 꼿꼿하게 펴고 있다. 팻말에는 ‘꽃이 지고난 후의 모습이 노파머리와 같아 이름이 붙여졌다’라고 적혀있었다. “깊은산의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초등학교에서 배운 노래 탓에, 지금까지 할미꽃이란 이름은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꼬부라져서 붙여진 줄 알았다. “하하하하 우습다 졸고있는 할미꽃, 아지랑이 속에서 무슨꿈을 꾸실까, ……” 동요를 흥얼거리며 내려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할미꽃’은 1930년 출간된 ‘조선동요백곡선’에 수록된 노래로, 홍난파가 작곡하고 윤극영이 가사를 쓴 100년이 다 되어가는 노래였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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