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가 좌절할 때
소아과 의사가 좌절할 때
  • 승인 2019.05.1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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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
임연수소아청소년과 원장
대구시의사회 재무이사
우리 병원에 다니는 남자 형제 2명이 있다. 첫째가 28개월인데 어린이집 다니고 나서 근 6개월 가까이 콧물 감기를 달고 있으니까, 시어른들이 한의원을 데려갔고 그 한의원에서 알러지 비염인데 2년만 다니면 고쳐준다 해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따져보자.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2년 약을 먹는다고 체질이 바뀔수 없고 또 아이를 2년간 매일 계속 약을 먹이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안 나으면 열심히 따라오지 않아 그렇다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체질이 이상해서 그러면 끝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나면 저절로도 좋아진다. 자주 감기를 해서 읍소하는 엄마들에게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면역계가 너무 순진한 상태여서 이 바이러스 저 바이러스를 겪어서 튼튼해지는 과정이 24~36개월 정도면 끝난다고. 지금은 면역계의 속성교육기간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지나가야하는 터널이라고. 놔두면 좋아지는 것을 자기네들이 치료해서 좋아졌다고 큰소리를 칠 것은 뻔한 일이다. 아무리 내 자식 아니지만 너무 무책임한 얘기 아닌가. 내가 소아과 의사이지만 내가 고쳐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모르는 길을 미리 알려주고 어떻게 대처하고 기다려 주는지를 알려주고, 약을 줘서 증상을 완화시켜주고(물론 위급한 심근염이나 길랑바레처럼 마비질환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주기도 한다) 큰 합병증을 예방해주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비해 스타 한의사라는 이가 tv에 나와 남의 공황장애를 너무나 쉽게 화병이라고 일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하고 혀만 보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걸 그냥 방송으로 내보내버리는 한심한 지금의 의료 현실이 무섭기까지 하다. 단순무식의 극치를 달리고 초단순 논리로 명쾌하게(?) 설명을 하다니. 그리고 일반인들도 가끔 아토피예요, 아니 예요 처럼 흑백을 좋아할 뿐 전후를 설명하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보건정책도 마찬가지다. 소아 상담료 인상에 관한 토론회 때 2분30초면 진료 시간이 충분하다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현실 인식이 나를 좌절케 한다. 단순 열로 오면 해열제 밖에 줄게 없는 경우 설명이 길어진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약을 안 쓰고 열이 쉽게 떨어지는 게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해열제 복용법, 어떤 경우에 다시 병원을 와야 하는 지를 설명하다보면 15분이 족히 걸릴 때도 많다. 예방접종으로 오면 시시콜콜한 걸 다 묻고 간다(아이를 달랠 때 아래위로는 안돼고 좌우는 돼나요 등). 초보 부모니 당연히 당황 할 수밖에.

질병관리본부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심심하면 필수 예방 백신이 모자라 아이들에게 죄인이 될 수밖에 없고 고가 약은 약값 후려치기로 질이 떨어지는 백신을 쓸 수밖에 없고 수급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무조건 유행하니 가서 맞으라고 홍보만 해서 우리가 모든 원망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그것뿐인가 추나 요법과 같이 확실히 검증되지도 않은 곳에 건강보험료를 소진하고 유병률은 낮지만 걸리면 치명적인 병 치료에 필요한 처치는 종종 삭감을 해버린다. 몇몇은 무시하면 되니까. 아이들 심장수술에 필요한 인조혈관의 경우 낮은 가격 후려치기로 고어사가 공급을 중단 했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숙아의 경우 체외막형산화기(ECMO)가 꼭 필요한 위급한 아이의 경우가 많다. 산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너무나 연약한 아기들을 치료할 때는 1초도 아까울 때가 많아 폐나 심부전이 오는 경우 이 장치를 쓰는데 쓰고 나서 아이가 죽거나 조금만 조건에 맞지 않으면 삭감을 해버려 종합병원에서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돈쓰는 하마로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신생아실 근무 때 처음으로 내가 보던 24주 미숙아가 폐부전으로 사망 후 영안실에서 조그마한 흰 상자가 왔다. 거기 담겨져 내려가는 짧은 미숙아의 인생. 그 쓸쓸함과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돈 생각하고 살 놈만 살리라고?

독감검사 때 발로 수십 번 차이고 얼굴에 침을 뱉고 그래도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니까. 치료하던 조현명 환자의 칼에 돌아가신 임세원 교수님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겠지만 최전선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의 어깨를 다독이지는 못할망정 돈이 안 되는 건 다 깎고 생색낼 만한건만 하고 인기랑 상관없는 진짜 어려운 소수의 환자는 무시하는 의료의 현실에 오늘 또 한번 날개가 꺾일 뿐이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건
나뭇가지를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날개에 대한 믿음도 이제는 어려워져 좌절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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