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천 년, 달구벌 굽어살핀 ‘당목’이자 주민의 ‘버팀목’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천 년, 달구벌 굽어살핀 ‘당목’이자 주민의 ‘버팀목’
  • 임종택
  • 승인 2019.05.1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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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보호수 중 절반 이상 차지
대구만 100그루…수종 중 ‘최다’
북구 연경동에 뿌리내린 노거수
수령 1천년·300년 나무 ‘나란히’
긴 세월 주민 곁 묵묵히 지켜
“지역과 공존해 온 역사의 보고
애정 갖고 그 숨결을 느껴보자”
느티나무
주변에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구시 북구 연경동 보호수 모습. 생육공간 확보를 위해 넓게 울타리를 쳐놓고 있다.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⑴ 대구의 밀레니엄 느티나무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은 어머니의 품속인 자연을 그리워하게 돼 있다. 그것은 인류 원초의 숲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야할까. 녹색갈증이라고 일컬어지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자연을 좋아하는 생명체의 본질적이고 유전적인 소양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생명체인 자연을 훼손하거나 예사로 짓밟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면서도 초록이 움트고 꽃이 피는 봄이 오거나 푸르른 여름날의 시원한 나무 그늘, 계절의 두 번째 봄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을날의 단풍, 심지어 벌거벗은 겨울 나무의 자태를 보고 좋아하는 것은 사람에게 그러한 유전자가 본래부터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숲, 도시속의 산, 도시속의 숲, 그리고 잘 만들어진 공원, 그 공원의 꽃들과 풀, 홀로 서 있는 큰키나무, 길가의 가로수, 가로수 길 지나 도시 인접 마을에 잘 보존돼 있는 우거진 마을 숲의 군상, 이 모든 자연 환경을 찾아가고 가꾸고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다.

대구신문은 대구·경북 지역의 녹색 자연을 주제로 한 ‘나무, 숲 그리고 자연 이야기’ 기획 연재를 준비했다. 이번 연재가 갈수록 고도화되고 급속한 사회 변화의 그늘에 가려진 현대인에게 인간성 회복과 인간주의 르네상스를 자각케 하는 매개체로 녹색 자연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낡은 청바지처럼 흐릿한 기억 너머에 존재하는 우리의 고향, 그 고향의 포근함과 안락함 그리고 위안의 에너지, 그것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임종택 나무치료사·대구한의대 환경조경학 박사과정
임종택 나무치료사·대구한의대 환경조경학 박사과정

 

‘밀레니엄 나무’ 즉 새천년나무는 산림청에서 지난 2000년 다가오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해 국가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느티나무를 밀레니엄 나무로 선정한 바 있다. 느티나무는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온 수목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보호수’라는 이름으로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는 1만1천 여 그루다. 그 중에서 느티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6천700여 그루(58%)로 절반이 넘고 있다. 도시는 물론 각 지역의 마을마다 그 위용과 역사를 간직하고 면면히 노목 거목의 숨결을 뿜어오고 있다.

농경사회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바람과 나무(특히 거목)의 움직임과 변화로 그해의 농사와 풍년, 그리고 길흉화복을 점쳤다.

또한 느티나무는 괴목으로, 그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인 당산목 혹은 당목이라 하여 당집을 지어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당제 혹은 동제를 지내는 대상이 됐다. 민속신앙인 당제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지역의 공동 선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행동 양식으로 자연을 숭배하는 신앙적 요소가 결부된 강한 신념의 체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없는 것은 현대의 개인주의적 생활 양식이 당제라는 민족 고유의 민속적 신앙에 대해 무관심하고 배척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전국적으로 많은 종류의 보호수 중에서 느티나무가 단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구만 보더라도 보호수 304그루(2017년 기준), 수종 26종 중에서 느티나무만 100그루가 넘어 제일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하는 느티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질감이 좋아 가구뿐만 아니라 악기, 목공예, 밥상 등을 만들거나 단단해서 사찰을 지을 때 기둥으로 쓰기도 했다.

‘수관’ 즉 나무의 줄기와 잎이 있는 윗부분의 모양이 평평하게 넓고 커서 수형이 매우 수려해 아름다우며 잎은 크지 않고 밀생되어 있어 그늘이 좋은 관계로 우리 조상들은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 정자를 짓고 마을의 중요한 회의를 개최하거나 쉼터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느티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면서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하고 경관이 아름다워 정자나무로서의 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대구시 북구 연경동에는 밀레니엄나무인 느티나무 한그루가 대구의 역사를 면면히 굽어보고 지금까지 그 찬연한 줄기를 후세까지 뻗어 내려오고 있다. 이곳 연경동에는 느티나무 보호수 두 그루가 있는데 한 그루는 수령 1000년, 나무높이 17m, 나무의 가슴둘레 6.8m(1982년 보호수 지정)와 바로 옆에 수령 300년, 나무높이 12m, 나무의 가슴둘레 4.8m인 두 그루가 바로 그것이다.

수령이 작은 나무는 2000년 9월 14호 태풍인 ‘샤오마이’로 인해 가지가 부러졌다. 수많은 전설과 설화가 깃들어 있을 이 나무는 의외로 대구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잘 모른다. “그런 나무가 있어요?”, “어느 동네예요?” 정도로 관심을 표시하지만 그러나 나무는 정작 누가 뭐라하든 천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한번도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 왔고 새들은 물론 곤충이나 하물며 곰팡이 이끼 등 한낱 보잘 것 없는 미물들에게조차 보금자리를 제공하면서도 불평 없이(적어도 내 생각에는)그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공존의 삶을 살아온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무수한 뭇 생명들이 함께 깃들어 사는 여기에 사람도 같이 깃들어 산다는 것을 왜 우리는 알지 못할까. 나무는 땅과 우주를 이어주는 연결자라 했다. 동학에서 말하는 ‘천·지·인’사상의 인은 사람이지만 사람은 미혹해서 자연을 통해서만 우주의 소리를 느꼈다. 그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무다. 모든 식물은 위로 자라는 속성이 있지만 특히 나무는 더욱 높이 하늘 아니 우주를 향해 위로 자란다. 그래서 사람은 나무를 보고 빌고 기원하며 우주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 조상들은 나무 밑으로 깃들어 그 품 안에서 지내왔다.

지금도 나무는 자신이 들었던 우주의 소리를 우리 인간에게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늘 밑으로 나무 밑으로 사람들은 더욱 깃들어야 한다. 그 바름과 공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연경동 느티나무는 대구를 상징하는 밀레니엄 나무다. 지난 2017년 내가 찾았을 때는 나무의 수관(가지와 잎이 있는 부분) 부분이 무척이나 시들해 보였다. 보호수로 지정된 노목 거목은 다른 일반 문화재와는 달리 성장하고 변화하는 생명력 있는 문화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생물보다는 관리나 보호가 더욱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보존하기도 어렵지만 한번 병해충에 걸리면 회복하기도 어려운 것이 또한 보호수다.

당시 LH주택공사에서 대규모 주택 건설공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마치 나무는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몰라 커다란 슬픔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누구하나 곁에 와서 나무의 고민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것 같아 내가 느낀 슬픔은 더욱 더 크게 다가왔다. 다행히 염려 덕분이었을까 해당 관청과 주택공사에서 이 천년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흙으로 너무 깊게 묻혀있던 뿌리 주변의 복토를 모두 걷어내고 뿌리가 뻗어 있는 지하부의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배수공사도 하고 또 그 뿌리가 잘 생존할 수 있도록 나무를 위해 삶의 터전을 좀 더 내 놓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무가 있는 주변은 이제 수천 가구의 아파트 촌으로 변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그곳을 지나가다 낭랑한 글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연경동이라 불렀다지만 이제는 나무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나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태봉산은 광해군 태실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태실은 도굴 훼손되고 없지만 굴곡진 역사의 숨결은 아직도 고스란히 그곳을 맴돌고 있으리라.

밀레니엄나무의 끈질긴 생존의 역사는 대구 시민의 의로운 성격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제는 나무를 지키는 것이 대구 시민의 1000년의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라 이 나무를 단 한번만이라도 찾아서 부둥켜 안고 그의 숨결을 느껴보면 어떨까.

나무의 무한한 에너지와 오로지 단 한 곳에서 켜켜히 쌓은 시간과 역사의 흔적을 눈으로 손으로 온몸으로 더듬어 보고 그때도 그랬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새들이 깃들고 벌레와 땅속 동물들, 밤이면 뭇 가지들 사이로 반짝이는 잔별들이 내려 앉아 살포시 잠을 청하는 곳, 그렇게 시간의 역사는 지금의 우리를 하나로 묶어놓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기억은 또한 잊혀져가는 나무의 존엄을 회복시키고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연대는 언제나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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