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살리려다 시장까지 죽을판”
“청년 살리려다 시장까지 죽을판”
  • 홍하은
  • 승인 2019.05.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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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초반 잠깐 ‘반짝’
지자체 임대료 지원 끊기자
한두곳 제외 전부 줄폐업
대부분 청년들 절실함 없어
힘들면 못버티고 바로 나가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
주변 상인들 사기 떨어뜨려
더 까다로운 커트라인 필요
중·장기적 컨설팅 지원해야

 

허울뿐인 청년상인 육성사업 - 中. 발길 끊긴 대구 청년시장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상인을 육성하기 위해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창업에 나선 전통시장 청년들 중 대다수가 폐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임대료 지원이 끊기자 적자 운영을 견디지 못해 1년도 못버티고 폐업을 선언했다. 대구시가 2016년부터 청년상인 육성을 위해 대구 북구 대현동 동대구시장, 서구 평리동 신평리시장, 달서구 성당동 두류종합시장, 서구 비산동 서부시장, 북구 산격동 산격종합시장, 달성군 현풍읍 현풍백년도깨비시장 등에 장소를 마련하고 청년몰 운영을 지원했지만 성과는 ‘제로(0)’인 상태이다. 현장을 둘러보고 청년상인들과 주변 상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상인을 육성하기 위해 예산을 쏟아붓었지만 창업에 나선 전통시장 청년들 중 대다수가 폐업에 이르렀다. 홍하은기자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상인을 육성하기 위해 예산을 쏟아붓었지만 창업에 나선 전통시장 청년들 중 대다수가 폐업에 이르렀다. 홍하은기자

 

◇ 문 닫은 청년가게

20일 오후 1시께 대구 서구 비산동 서부시장은 북적이는 ‘시장’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저녁 장사를 위해 문을 닫은 업체들로 시장 내 골목은 한산했다.

서부시장 초입에 ‘청춘마켓’ 간판이 눈에 띄었다. 청춘마켓 골목으로 들어서자 청년점포 10곳이 운영한다는 안내판 설명과는 달리 골목은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골목 안 점포들은 대다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으며,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임대’ ,‘세 놓습니다. 010-○○○○-△△△△’ 푯말이 붙여 있었다.

서부시장의 ‘열정사단 청춘마켓’은 서구청이 2017년 중기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사업비 2억9천만원을 투입해 청년점포들로 구성된 청년거리를 조성했다. 분식, 철판구이, 동남아시아 푸드, 디저트 카페 등 10개의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된 청춘마켓은 지난해 4월 청년의 열정으로 서부시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1년 만에 2개 점포를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청년점포 중 골목 내 유일하게 가게 문을 연 두심건강곡물제작소 김 모대표(42)는 “처음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궁금해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고 그랬는데 그 이후에는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손님이 끊기고 지자체의 임대료 지원도 끝나자 줄폐업이 이어졌다. 1년도 못버틴 가게가 대부분이다. 입점 초기부터 운영하고 있는 가게는 나 포함 두 곳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청년가게의 업종 선택 등 기획 부족과 잘못된 입지선정을 지적했다. 그는 “이 골목은 원래 조용했던 곳이다.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 장사가 안 돼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매달 월세내기도 빠듯한 실정”이라며 “청년들의 아이디어라고 무조건 지원해주기보다 시장 컨셉에 맞는 업종을 선정해 지원해줘야 한다. 애초 계획할 때 상권을 분석한 후 상관성 있는 업종을 하고 있는 청년상인을 육성해야 전통시장도 살리고 청년상인도 육성하는 취지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인근 상인 “청년상인 육성사업 이대로 가서는 안돼”

다른 청년시장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구 서구 평리동에 위치한 신평리시장은 청년점포가 입점했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10개의 청년점포가 입점했던 이 곳은 초기 청년몰 입점 초기 문을 열었던 가게는 2곳 뿐.

대구의 청년시장 1호점인 북구 대현동 동대구시장의 ‘청춘장’도 입점 초기부터 문을 열었던 점포는 11개 중 3개 뿐이다. 일부 상인들은 시장을 살리려면 청년상인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기존 상인들과 함께 시장 전체를 지원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인근에서 해물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심모(여·51)씨는 “청년상인들이 지원이 끊기자 1년도 못버티고 하나둘씩 문을 닫고 나가기 시작했다. 청년가게들이 한꺼번에 빠지자 ‘죽은 시장’이 됐다. 이 골목을 살리려고 상인들끼리 죽을 힘을 다해 지금은 비었던 곳에 가게도 들어오고 해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청년 살리려다가 기존에 있는 상인들 다 죽인다”고 청년상인 육성지원 사업을 비판했다. 심 대표는 청년상인을 지원하기보다 경력단절여성 등 생계를 위해 생업에 뛰어든 사람에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곳에서 40여년 넘게 국수 장사를 한 김 모씨도 “청년들은 힘들면 못버티고 바로 나간다. 절실함이 없으니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장사를 쉽게 보고 덤벼들어서 해놓고는 잘 안되면 다른 데로 가버린다”며 혀를 찼다.

동대구시장에서 지원을 받아 가게를 운영하다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인수하고 다른 사업을 운영 중인 김동영(27)씨도 대상 선정 및 지원 방식을 지적했다. 김 씨는 “대상을 선정할 때 좀 더 까다롭게 커트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사장들도 꽤 있었는데 옆에 있는 가게들도 같이 사기가 떨어진다”며 “청년상인에게는 임대료나 인테리어 지원보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당시에도 교육이 있었지만 ‘시간 떼우기 식’의 교육이 대부분. 청년가게가 롱런하려면 맨투맨으로 중·장기적인 컨설팅 및 교육을 지원해 1년은 버틸 수 있도록 해야 사업 취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하은기자 haohong73@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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