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철근이 내뿜는 강인한 생명력
폐철근이 내뿜는 강인한 생명력
  • 황인옥
  • 승인 2019.05.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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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조각가 박휘봉展
잘린 폐철근서 강렬한 힘 느껴
구상→추상으로 작품세계 선회
철조각 빼곡한 담긴 ‘대형수조’
구부러진 철근 물결처럼 ‘일렁’
자연의 질서 담은 개념미술 표본
박휘봉작-유틸리티드3
박휘봉작.

박휘봉-흑백
조각가 박휘봉

여자의 변신만 무죄일까? 예술가의 변신에는 무죄를 넘어 찬사가 쏟아진다. 꼭 그래서만은 아닐지라도 예술가라면 가끔은 변신을 꿈꾼다. 변신이 숨구멍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변신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무르익은 원숙미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초라한 변신에 그칠 공산이 높고, 이때 찬사는 고사하고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팔순을 앞둔 원로 조각가 박휘봉(79·사진)의 변신은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60대 후반이라는 적잖은 나이에 구상조각에서 추상조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10여년 동안 완성도를 축적해 세상에 내놓았다.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에서 26일까지 변화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형 수조 작품부터 소형 조각까지 10여점을 설치했다. “2007년부터 새롭게 시도해 10년 동안 완성도를 높여온 작품들을 이번에 첫 선을 보이게 됐어요.”

가장 큰 변화는 형상으로부터의 자유다. 인체나 얼굴 등의 형상으로 대표되는 구상조각에서 선으로 대변되는 추상조각으로 변화했다. 구상조각을 할 때도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어느 하나에 구속되는 것이 천성에 맞지 않았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다 결국 추상으로 급선회했다. “형식은 많은 사람의 공유에서 시작되고 그것에 매이죠. 그런 부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재료도 변했다. 돌이나 철판에서 폐철근을 사용한다. 면에서 선으로의 변화다. “2007년에 우연히 고물상을 지나다 폐철근 덩어리를 발견하고 영감을 받아 시도한 변화”다. 폐철근 덩어리에서 우리네 인생을 발견한 것. 완전한 추상으로 넘어온 것은 2015년이다.

“잘려진 폐철 하나 하나에서 추사 김정희의 난을 보았어요. 추사의 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힘과 추사의 글씨체에서 번져 나오는 바윗돌 같은 강한 기운을 느꼈죠,”

전시장 중앙에 설치한 대형 수조는 압권이다. 수조에 구부리거나 바르게 편 폐철근 조각들이 빼곡하게 도열해 있고, 수조 입구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동세(動勢)와 리듬감이 꿈틀댄다. “어린시절 개울물 속에서 물결치는 풍경이나 바위의 모습을 떠올리고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돌 위에 세워놓은 철근들도 있다. 수조 속 철근이나 돌 위의 철근이나 속에 담은 내용은 다르지 않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개념미술이다.

“자연의 질서는 거스름이 없죠.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지요. 인간생활도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참 지혜니까요.”

작가는 교직과 창작을 병행하다 정년을 4년 앞두고 명예퇴직했다. 1960년에 부산사범대학에서 미술과를 졸업하고 20여년 후에 영남대학교 조소과에 편입했다. 편입 조건이 맞아 선택한 조소였지만 어린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터라 조소와는 궁합이 잘 맞았다. 조소에 대한 열정은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며 생을 정리할 시기에 마르지 않은 창작열을 불태우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작업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끼어들 틈이 없지요.” 053-661-350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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