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다녀가다’ 울진 성류굴서 명문 발견
‘진흥왕 다녀가다’ 울진 성류굴서 명문 발견
  • 김익종
  • 승인 2019.05.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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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560년) 6월
잔교를 만들고…’
세로 6행 총 25자 새겨
“신라사 새롭게 구성할
국보에 버금가는 자료”
울진
울진 성류굴에서 ‘진흥왕’이 다녀갔다는 명문이 발견됐다. 오세윤 사진작가 촬영

 

울진군은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와 신라사 전공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함께 판독한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익<木+益>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진흥)/ 王擧(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라는 성류굴 명문을 23일 공개했다. 문구는 “경진년(560, 진흥왕 21년) 6월,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고 울진군은 설명했다.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자, 2행 5자, 3행 5자, 4행 2자, 5행 2자, 6행 6자로 모두 25자를 새겼다.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 정도인데, ‘眞興王擧’(진흥왕거)라는 네 글자는 다른 글씨보다 유독 크게 써서 강조했다. 지표 기준으로 약 2.3m 높이에 가로 35㎝, 세로 40㎝인 굴곡진 면에 음각했다. 글씨는 예서(고대 서체인 전세를 간략하게 만든 서체) 분위기가 있는 해서(정자체)다.

진흥왕은 북한산과 마운령, 그리고 황초령에 순수비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신라시대 군주다.

명문은 지난 3월 신라시대 문자자료가 무더기로 확인된 제8광장에서 발견됐다.

울진군은 “이런 사실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기존 문헌에는 보이지 않던 것으로 신라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잔교(棧橋)란 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해 놓은 다리 모양 구조물을 말한다. 이를 통해 화물을 싣거나 부리고 선객이 오르내린다. 조사단은 “진흥왕의 이동에는 선박이 활용됐고, 행차에는 50인이 보좌했으며, 행차와 관련해 동굴 내부를 잇는 잔교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특히 ‘진흥’(眞興)이라는 글자를 통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심현용 연구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에는 진흥왕 20년(559)부터 22년(561)까지 기록이 비어 있다”며 “성류굴 명문은 공백기로 남은 진흥왕 대 역사상을 알려주는 엄청난 자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울진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며 “성류굴 신라 명문들은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에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울진군과 문화재청은 지난달 신라 원성왕 14년(798)에 화랑과 승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동굴 내부에서 명문이 발견되기는 국내 처음으로, 입구에서 230여m 떨어진 지점 주변에서 각석(刻石) 명문 30여개가 확인됐다.

울진=김익종기자 uljinsama@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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