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아, 6월 아트부산·갤러리 비선재展
박경아, 6월 아트부산·갤러리 비선재展
  • 황인옥
  • 승인 2019.05.26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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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대상으로 추상회화 구현
“의식 벗고 무위로 가고 싶어”
박경아작-갤러리비선재제공
박경아 irgendwo, irgendwas 19150-008, 227x181.8cm, Oil on canvas, 2019.


넓은 공간에 비해 의외로 작업실은 단출했다. 작가 박경아가 2019 아트부산과 6월 11일 갤러리 비선재에서 열리는 개인전 준비로 많은 작품들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유달리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물감이었다. 작업실 입구부터 작업대 근처까지 물감들이 공간을 잠식했다. 모두가 깡통물감. 튜브도 아닌 깡통물감을 쟁여놓고 있다는 것은 풍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작업에 물감을 많이 쓴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시나 벽에 걸린 작품들 모두 아크릴 페인팅이 아닌 유화 추상 작품들이었다.

물감에 뺏긴 방문자의 시선을 그림으로 돌리려는 듯 작가가 “회화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스스로 극대화 되는 순간”이라고 선방을 쳤다. 원론으로서의 회화론에 대한 언급이었다. 회화의 사전적 의미가 평면상에 색채와 선을 써서 여러 가지 형상과 느낀 바를 표현하는 조형 예술이라고 한다면, 작가는 형상과 통찰 이전에 평면과 색채라는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회화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편에 선다는 말이었다. “의도 보다는 우연이, 윤곽의 뚜렷함 보다는 흐트러짐이, 단순함 보다는 겹겹이 올려진 색의 혼합이 회화성을 짙게 만들죠.”

색을 기반으로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시각적 결과는 철저하게 추상이다. 재현적인 풍경 이미지는 애초에 버리고 없다. 두텁게 덧칠한 물감의 두터운 질감이나 도구로 물감을 긁어낸 손맛의 꿈틀대는 미감에 언뜻언뜻 풍경이 스치는 정도다. 그것마저 감상자의 민감한 촉의 몫으로 남겨둘 뿐 재현된 풍경을 실루엣으로도 만나기는 어렵다. 작가가 “보는 그림이면서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가까이서 보면 물감이 발려진 것만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물감이 서로 뭉치고 얽힌 손맛을 느낄 수 있어요. 형상을 단순하게 보는, 혹은 감정의 표출로써의 추상성이 아닌 진정한 회화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경험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언뜻 보면 현대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와 형식적 유사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두 작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리히터가 대상의 경계를 흐려서 대상성의 부각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면 박경아의 회화는 개인적 서사다. 작가 개인사를 심상적인 풍경으로 풀어낸 일종의 ‘자기해방’인 것이다. “그림을 통해 희노애락, 특히 슬픔이나 아픔을 해소해요.”

구상작업을 하던 시기의 정서는 애수였다. 10여년 간 의 치열했던 독일 유학 생활의 감정들이 작품의 정서가 됐다. 애수는 주로 창밖 너머의 풍경으로 은유되곤 했다. 작가는 창밖 풍경에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며 향수를 달랬다. 이 시기부터 작가에게 그림은 자아를 찾아가는 매개가 됐다. “이때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알아내기 위해 내 안으로 침잠하던 시기였어요. 내가 직면한 감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며 자아를 찾아갔어요.”

상황은 힘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녀 편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작가가 “지금까지 미술계의 중심축에 발을 딛고 서왔던 현실”에 대한 에두른 표현이었다. 독일 유학 시기에는 지도교수가 눈여겨 봐주었고, 귀국해서도 미술계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나간 적이 없었다. 작가의 운이 절정을 치달은 건 갤러리 비선재와의 만남. 2017년 갤러리 비선재 전속작가로 선정되어 갤러리의 지원 아래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더라도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강단이 작가에게, 작품에 스며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감정을 기반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그만큼 작업에 쏟는 에너지나 열정도 컸던 것 같아요.”

감정을 매개로한 구상에서 감정을 걷어낸 추상으로의 변화조짐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2017년 대구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게 되고, 갤러리 비선재 전속작가가 되면서 원하는 만큼 물감을 살 수 있게 되면서 물성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애수의 감정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구상에 흥미를 갖지 못했지만 상황에 딸려갔던 작업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상황이 되자 자연스럽게 추상이 드러난 것 같아요.”

추상작업으로 변화하면서 즉흥성이 화두가 됐다. 색 선택이 끝나고 화면에 색을 얹으면 이때부터 즉흥성이 강하게 발현된다. 캔버스에 올린 색을 붓이나 나이프, 스퀴지 등으로 손맛을 더해 색을 즉흥적으로 밀어내거나 올리는 것. 현재의 작업은 건축현장에서 사용되는 시멘트 칼을 주로 사용한다. 추상을 기본으로 하지만, 역시나 대상은 풍경을 기초로 한다. “의식적으로 그리는 행위에서 벗어나 ‘무위적인 그림’으로 향해가고 싶어요. ‘무엇을 그리자’고 고민하지 않은 무위적인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되는 회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2019 아트부산은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벡스코(BEXCO) 제1전시장, 갤러리 비선재 개인전을 6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다. 02-793-544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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