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하숙집의 순례자와 길 위의 순례자
[문화칼럼] 하숙집의 순례자와 길 위의 순례자
  • 승인 2019.05.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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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나 역시 그 중 하나지만, 많은 사람들이 버킷리스트 상위에 올려놓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 은퇴 후 이곳을 찾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이 순례길 중 대표적인 것은 프랑스길, 프랑스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km 정도의 순례길.

중세시대부터 순례자들의 중요한 코스였지만, 유명 음반회사에서 일하던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걸은 후 그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소설 ‘순례자’를 쓰게 되었고 그 후 이 길은 많은 사람이 자아를 찾아 나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코스가 되었다.

이 순례 길의 사분의 삼 쯤 지난 지점에 하숙집이 생겼었다. 방송 프로그램 제목이기도 한 ‘스페인 하숙’이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라는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삼시세끼’의 해외버전인 이 하숙집은 직접 찾아온 순례 객들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아늑함과 위로 그리고 푸근한 인심을 주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손님 오면 준비한 밥 차려주고 잠자리 내 주는 것이 전부다.

압권은 음식이다. 차승원의 솜씨로 차려진 오삼불고기, 소고기 미역국, 오징어 볶음 그리고 해물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정말 정갈하고 맛나 보이는 음식이 길 위의 나그네들에게 푸짐하게 제공된다. 그것도 아주 싸게- 해외에 나가본 사람은 안다. 외롭고 힘들 때 만나는 한국음식은 한 끼 식사의 의미를 훨씬 웃돈다. 유해진의 따뜻한 환대와 차승원의 요리를 접하는 사람들의 행복해 하는 모습에 우리도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에게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이 길은 고행을 마친 사람에게 많은 변화를 준다. 샐러리맨에서 세계적 작가로,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이 다른 이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으로- 긴 시간 힘들게 걷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 속에 자신을 찾았다는 많은 경험담이 있다. 하지만 이 순례 길은 너무나 호사스럽게 보일정도로 혹독한 순례길이 있다. 티베트 사람들이 생애 한 번은 원한다는 성지 ‘라싸’를 향한 오체투지 순례.

예전 차마고도를 다룬 방송과 일전에 나온 영화 ‘영혼의 순례길’을 통해서 그 고행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의 끝과 같은 험한 땅에서 일 년씩이나 걸려, 2000km 이상의 거리를 단 한 뼘의 거리도 예외 없이 오체투지로만 나아가는 과정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고통스런 순례다.

그들은 말한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결국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태어날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해 순례를 한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떤 순례자는 “죽음은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어차피 겪을 일, 슬픔을 딛고 순례에 온 몸을 바침으로써 오히려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온몸이 부셔져라 고통을 자초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속죄와 더불어 마음의 행복과 기쁨을 찾는다.

영화 ‘영혼의 순례길’은 픽션 같은 논픽션이며, 다큐멘터리 같지만 의도된 연출작이다.

반면 방송 프로그램 차마고도에서 다룬 순례는 그 어떤 연출도 없다. 여기에 비치는 순례자들은 일체의 요령이 없다. 정확히 다섯 걸음에 오체투지를 한다. 극한의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는 정말 어려울 텐데 그들은 힘이 들수록, 고통이 클수록 자신의 죄가 정화된다고 믿는다. 더구나 순례 중에 죽으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한다. 이런 처절한 희생을 통해서야 변화가 따르는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 길과 티베트 라싸 순례 길은 그 결이 매우 다르다. 가톨릭과 불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의 배경이 그렇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티베트 순례 길에 비하면)을 걷는 것과 평균 해발고도 4000미터가 넘는 험로에서 몰아치는 히말라야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오체투지의 과정이 그렇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찾는 것은 대동소이 하다. 마음의 고통이 사라지고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는 결과는 같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길을 나서 고행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한 때 만지작거리다가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나의 버킷리스트-산티아고 순례길. 다시금 꺼내보고 싶다.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걸을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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