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 형상화한 달구벌서 조선의 새벽이 열리다
암탉 형상화한 달구벌서 조선의 새벽이 열리다
  • 이대영
  • 승인 2019.05.29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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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과 신라, 동트는 달구벌서
조시 개최로 새 아침 열어
새 나라 새 문화의 둥지 역할
정도전, 나주 회진 유배길에
새 나라 건국을 다짐
노비의 자식도 복락 누리는
이상적인 나라 건설 꿈 키워
국명을 ‘조선’이라 천명하고
명나라에 ‘대명윤허’ 받아
신택리지-달구벌호수
오래전 달구벌호수 공룡의 알. 그림 이대영

 

이대영의 신대구 택리지 - (21)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다

달구벌의 올곧음은 평시위정에 있어 국태민안의 민복을 추구했으며, 전란 때에는 호국정신으로 발현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태양의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은 것처럼 달구벌의 올곧음이 다른 지역보다 더 꼴사나운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조 왕건(太祖王建)이 동수전투(桐藪戰鬪)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주하고 난 뒤부터 반역의 고향(逆反之鄕)으로 대구현을 성주현(星州縣)에 속현시켰으며, 일본제국의 대륙침략의 병참기지 혹은 대동아공영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해방이후 경공업지역으로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제조업근로자가 많아서 한반도의 모스크바로 오인을 받았고, 또한 10월 1일 사건까지 발생했다.

사회적 기현상으로는 1995년 4월 28일 7시 52분경 대구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공사현장에서 그라우팅(grouting) 천공작업으로 도시가스배관을 관통시켜 폭발음과 50m 불기둥으로 101명 사망 202명 부상 등 540억 원의 피해를 내었던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 2월 18일 9시 53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우울증환자의 방화사건으로 192명 사망, 21명 실종, 148명 부상이라는 지하철참사 세계1위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세계3대 지하철 대형사고 가운데 대구시가 상인동가스 폭발사건과 중앙역 방화참사로 1위와 2위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대형사고의 연속으로 고담도시 대구(Gotham City Daegu)라는 악명을 얻었다. 이에는 차분하지 않고 성급한 ‘욱~하는 기질’이 한몫했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이렇게 욱~ 하는 기질로 뒤집히는 경우도 있었다. 비근한 사례를 든다면, 1971년 4월 27일 대구경북에 살포된 정체불명의 지라시(ジラシ, 傳單)가 지역표심을 자극시켰다. ‘전라도 사람들이여 단결하라’는 내용이었다. 김대중 후보자의 벽보 밑에다가 ‘호남 후보자에게 몰표를 주자’는 낙서가 대구유권자의 표심을 뒤집어 놓았다. 물론 이런 작전은 ‘선거의 연금술사(귀재)’라는 엄창록(嚴昌錄)의 욱하는 대구정서를 노린 작전이었다.

선거이외에도 1946년 10월 사건 당시, 10월 2일 오전 9시경에 경북대학교 의학과대학 학생회장 최무학(崔武學)과 학생 4명이 콜레라환자 시신 1구를 영안실에 끄집어내어 들것에 들고, ‘경찰이 총으로 쏴 죽인 시체’라는 구호를 위치면서 시가행진을 해 시위군중의 군중심리를 자극시켰다. 팽팽하게 당겨진 피아노 줄을 튕긴 것처럼 효과는 명확했다. 이런 대구정서를 잘 아는 지략가들은 ‘대구사람들은 주먹으로 치기보다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찌르라’고 한다.



◇ 달구벌 암탉이 부화했던 개벽과 탁란

‘동트는 달구벌’에서 새로운 세상개벽(世上開闢). 모래가 가장 많이 생성되는 곳은 물이 있는 강섶이나 해변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 지구촌 모래의 90%는 물이 없는 사막에 있다. 바람에 의해서 모래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구면적에 바다(물)와 육지(땅)의 비율을 대략 70:30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바다(물) 밑은 분명히 육지(땅)다. 우리 대부분은 수박 겉만 핥아보고 다 먹어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착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하다. 나 역시 대구에 수십 년을 살아왔고, 살고 있지만 정작 대구를 모르고 있다.

중국 사자성어에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지방에서 너무 탐스러운 귤을 북쪽지방에 심었더니 탱자밖에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반대로 길섶에 땅에 딱 붙어서 자라지 않는 다북쑥을 삼(大麻)밭에 심었더니 붙들어매지도 않았는데 삼 따라 쑥쑥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直). 지구촌의 생물체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무생물체도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형상이 결정된다.

달구벌은 암탉을 형상화하였으며, 빈계사신(牝鷄司辰)을 상징하기에 ‘동트는 달구벌’이었고, 새로운 세상을 개벽(開闢)하는 곳이었다. 삼한시대 조시(朝市)를 개최했다는 것은 ‘새로운 나라의 아침을 열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새로운 하루가 동이 트듯이 개벽을 하는 것은 암탉의 사명인 ‘알까기(孵化)’에 있다. 대구의 닭벌(달구벌)은 곧바로 얼, 문화, 사상, 철학 등의 무형적 형이상학(形而上學)을 생성했으며, 새로운 나라(세상)와 새로운 문화의 둥지로 역할을 해 왔다. 마치 담는 그릇에 따라 물의 형상이 결정되는 것처럼 삼한, 신라, 고려, 조선 및 오늘날 우리나라의 새벽을 열었던 곳이다.

삼한과 신라는 ‘동트는 달구벌’에서 조시(朝市)를 열어서 새로운 세상을 개벽했다. 고려와 조선의 개벽신탁을 이곳에서 얻었다. AD 927년 동수대전(桐藪大戰)은 달구벌이 왕건(王建, 877~943)에게 던졌던 제왕과제였다. 과제명은 ‘황금매미가 껍질을 벗어던져야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金蟬脫殼)’는 행동과제였다. 5천명의 정예기마병은 지묘동 동수대전에서 3중 포위되어 ‘독안에 든 쥐 신세’였다. 황금갑옷과 용마를 벗어던지고 견훤군의 병졸복장으로 탈주해 구사일생(九死一生)했던 그는 고려 태조가 되었다.

AD 1380년 정도전(鄭道傳)은 원나라 사신을 맞아 극진히 대접하라는 이인임(李仁任,?~1388)의 지시를 소홀히 했다는 죄목으로 나주 회진(羅州會津)에 2년간 유배 갔다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촌로(村老) 한 분이 “세상관리들은 녹봉만 축내는 도둑들이다”라고 호되게 꾸중을 하는 바람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삼한갑족(三韓甲族)들이 개벽을 위해 찾았던 달구벌에서 ‘조시의 신선함(朝市之新鮮)’이 뼈에 사무치도록 감동을 주었다.

고향 봉화까지 가는 동안 20년 조선건국프로젝트를 생각했으며, 곧바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과 경제문갑(經濟文匣), 불씨잡변(佛氏雜辯) 등의 조선건국설계를 했다. 자신의 신분에 대해 현실적인 뼈아픔을 느끼면서 ‘노비의 자손들도 복락을 누리는 이상향(utopia) 조선’을 디자인했다. 특히 공무원의 독직죄(瀆職罪)에 대해선 ‘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탕형(텅형)’으로 규정해서 경국대전에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새롭게 개벽하는 국명(國名)을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출신고향 화령(和寧, 오늘날 함흥)과 조선(朝鮮)으로 하자고 천명했다. 결국 1392년 11월에 예문관 학사 한상질(韓尙質,?~1400, 한명회의 조부)을 명나라에 보내 화령과 조선 중 택일을 요청한 결과 ‘조선(朝鮮)’으로 하도록 대명윤허(大明允許)를 받았다.

중국이 동이족으로 여겼던 한민족(韓民族)을 조선(朝鮮)이라고 한 건 ‘조시(朝市)에 바쳐지는 생선제물(朝市拱鮮)’이란 기원의 뜻이다. 위만조선(衛滿朝鮮), 기자조선(箕子朝鮮) 등으로 호칭했다. 화령보다 조선(朝鮮)이라고 허락한 사연에도 ‘중국대국의 조시에 받쳐지는 생선 제물에만 머물러라(爲大明中原, 唯朝市拱鮮)’라는 속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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