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나무의 삶> 우리의 시골가로수 양버들, 프랑스에선 ‘혁명의 나무’
<길고 긴 나무의 삶> 우리의 시골가로수 양버들, 프랑스에선 ‘혁명의 나무’
  • 김광재
  • 승인 2019.05.30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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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이 들려주는 ‘인문학적 나무’
17가지 나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시대·장르 넘나들며 색다르게 조명
나무 이름 어원·에피소드·상징성 등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과 다를지라도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나무와 사람’

 

'길고 긴 나무의 삶' 표지.
'길고 긴 나무의 삶' 표지.
피오나 스태퍼드/강경이 옮김/380쪽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노래방에서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을 부르자, 한 선배가 네가 어찌 이 노래를 아느냐고 반색을 하며 같이 불렀던 적이 있다. 어릴 적에 그 노래를 따라부르면서도 마로니에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후 불로동에서 파군재 삼거리로 가는 길의 가로수가 마로니에라는 걸 알고는, 헤어졌던 동무를 만난 듯이 반가웠었다. 그곳을 지날 때는 으레 그 노래를 흥얼거렸었는데, 그 일대가 개발되면서 마로니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대구에 사는 사람은 마로니에라는 나무에 대해 이런 정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마로니에에 대한 기억이나 감정은 훨씬 다양하고 풍부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나무나 느티나무에 대해 느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유럽 사람들이 각종 나무에 대해 가진 생각이나 느낌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교수인 피오나 스태퍼드가 쓴 ‘길고 긴 나무의 삶(강경이 옮김/2019/ 클)’은 시대와 지역, 장르를 넘나드는 방대한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나무는 주목, 벚나무, 마가목, 올리브나무, 사이프러스, 참나무, 물푸레나무, 포플러, 호랑가시나무, 시커모어, 자작나무, 마로니에, 느릅나무, 버드나무, 산사나무, 소나무, 사과나무 등 모두 17가지다.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나무를 읽어내는 작업은 계명대 강판권 교수의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책이 나와있다. 영국인이 쓴 ‘길고 긴 나무의 삶’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역사와 관련해 나무를 바라본 책들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색다른 정보와 시각을 제시한다. 같은 나무에 대해 우리와 전혀 다른 의미와 감정이 투영되는 경우도 많다.

 

포플러나무. ⓒ일러스트 장선영

 


예를 들면 이 책에서 롬바르디아 포플러(Populus nigra ‘Italica’)라고 소개하는 나무는 우리나라에선 양버들이라고 불린다. 과거 시골 비포장길 옆에 줄지어 곧게 서 있던 나무로, 잔가지도 하늘로 향해 뻗어오른 특이한 모습때문에 ‘빗자루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개화기에 들여와 가로수로 많이 심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우리에겐 추억의 시골길 가로수인 이 나무가 프랑스 혁명기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민중(populace)’이란 말과 어원이 같은데다 장 자크 루소의 무덤을 둘러싼 나무였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이 이 나무를 새 공화국의 상징으로 심는 모습을 담은 대중 판화가 나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포플러 가문은 어리둥절할 절도로 방대해서 다양한 품종을 알아보기가 늘 쉽지많은 않다”라고 하는 대목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빙그레 미소를 띠게 만든다. 포플러, 이태리 포플러, 미루나무, 사시나무, 은사시나무, 현사시나무, 은백양, 양버들 등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올리브나무.
올리브나무.

 

이 책은 ‘가디언’ 올해의 책, ‘선데이타임스’ 올해의 네이처 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디언’은 “아름답다. 마음을 달래주는 이 책을 하루에 한 장씩 읽는다면 모든 불안이 달아날 것이다.”라고 했다. 하루에 한 장(나무)씩 읽어나가는 것은 우리에게도 좋은 독서방법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은 영국인 독자들과는 달리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번역자가 많은 주석을 달아놓기는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낯선 지명, 인명, 나무이름, 에피소드 등은 다른 자료들을 더 참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승인된 체리피커cherrypicker만이 잉글랜드 과수원의 서글픈 기억과 계절의 자연적 리듬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라는 문장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이리저리 찾아봤더니, 영국에서는 사다리차를 체리피커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니까 벚나무 열매 체리가 도시에서는 사다리차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만 남아있다는 의미다. 요즘 체리피커라는 말이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기는 소비자들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다 보니 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또 마로니에라는 이름에 대한 긴 설명도 마로니에의 영어명이 ‘말’과 ‘밤’이 합해진 ‘horse chestnut’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쉽게 이해가 된다.

이런 한두 가지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진 장점은 독자로 하여금 나무와 얽힌 개인적, 집단적 기억들을 되살려준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에서 나무를 제외한다면 얼마나 삭막할지를 깨닫게 해준다. 저자가 ‘싹, 나무껍질, 황금가지’라는 제목으로 쓴 서문은 독자들을 위한 길라잡이이면서 나무와 사람의 관계를 다룬 훌륭한 에세이이다.

“한때 살아 있던 사물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 구슬 목걸이와 대나무 책장부터 참나무 마룻바닥과 올리브나무 과일 그릇, 소나무 궤와 삼나무 연필, 삼나무 빵 보관함과 흰 목제 의자까지. 그러나 내가 직접 본 나무들에서 훔쳐온 작은 기념품은 왠지 모르게 나를 자연 환경과 더 빨리 이어준다. 내 책상 위 참나무 가지는 하나의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단숨에 나를 안전하게 이끄는 황금가지다.”

저자는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여서 책을 내려놓고 나무나 삽을 찾으러 간다면 이 책은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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