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산길 곳곳 수줍게 고개 든 너, 날 마중나왔구나
호젓한 산길 곳곳 수줍게 고개 든 너, 날 마중나왔구나
  • 김광재
  • 승인 2019.05.30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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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제 앞둔 영주 소백산을 오르다
나뭇잎이 싱그러운 5월
분홍빛 바다 꿈꾸며 등반
비로봉 정상 탁 트인 전망
천연기념물 주목군락 보여
1천500그루 무리지어 자생
군데군데 핀 철쭉꽃
때 잘못 맞춘 등산객 반겨
소백산철쭉
 


오래 전에 서울 토박이 친구와 비슬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비슬산 자연휴양림에서 대견사지(절을 다시 짓기 전이라 돌탑만 있을 때였다)로 올랐다가 유가사로 내려왔었다. 참꽃 군락지에서 그는 꽃이 만발한 풍경을 상상했는지 꽃필 때 꼭 다시 오겠노라 다짐을 했었다. 그 후 가끔 비슬산 참꽃 얘기를 꺼내곤 했는데 이제야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눈부신 햇살과 드넓게 펼쳐진 분홍빛 바다를 그간 꿈꿔왔겠지만, 지난 4월의 끝자락 그가 동대구역에 내렸을 때는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 산길을 걸어 대견사까지 올라갔다. 비슬산참꽃문화제는 일주일 전에 끝났지만, 절 뒤편 참꽃 군락지에서는 아직 분홍색 잔치가 한창이었다. 진달래 꽃분홍은 주위의 미세한 물방울들을 물들이고 있었고, 비안개는 장막처럼 사위를 둘러쌌다. 우리는 마치 꿈속을 떠다니듯 참꽃 사이를 걸어 다녔다.


 
소백산철쭉
 


며칠 뒤 소백산 철쭉을 보러가자는 연락이 왔다. 둘 다 분홍에 홀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의기투합했다. 영주 소백산 철쭉제를 며칠 앞둔 날로 정했다. 그때쯤이면 철쭉이 활짝은 아니더라도 볼만한 정도로는 피어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삼가동코스로 비로봉에 올라 연화봉을 거쳐 희방사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서울과 대구에서 각자 운전해 와서 희방제2주차장에서 만났다. 차 한 대는 그곳에 두고, 30분 정도 운전해 삼가동 비로사 주차장서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그래도 걸어야할 거리가 약 10㎞였다. 경주에서 온 산악회 팀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국립공원 답게 잘 정비된 등산로를 올랐다.

화사한 봄날, 나뭇잎은 너무 짙어지기 전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도시공원에 핀 철쭉은 처참한 모습으로 다 지고 말았지만, 이곳은 산이 높아 5월말부터 6월초까지가 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법 높이 올라왔는데도 철쭉꽃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연두색 잎들 사이로 연분홍 꽃을 피우고 서있는 나무가 드물게 보일 뿐이었다. 아직 피지 않은 것인지 피었다 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꽃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소백산도 초행이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주목군락지
천연기념물 244호 소백산 주목군락.



비로봉 정상에서 둘러보는 전망은 훌륭했다. 근교 산에서 올라 도심을 내려다볼 때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지만,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1439.5m 비로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들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소백의 백은 흰백(白)자인데, 그 기원은 ‘밝다’의 ‘밝’이라고 한다. 하늘, 밝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산이름에 반영됐을 것이다.

정상부에는 넓게 데크를 만들어 놓았고, 능선길도 나무와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과 데크를 밟고 다니도록 만들어놓았다. 과거 마구잡이로 산에 올라 훼손됐던 정상부와 능선의 식생과 토양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데크길 옆으로 ‘훼손지 복구 모니터링’이라는 팻말이 꽂혀있는 곳도 있다. 천연기념물 244호 주목군락도 보인다. 안내판에는 수령 200~300년 된 주목 1천500여 그루가 4만5천여평의 면적에 무리를 이뤄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또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망봉과 연화봉에 이르는 능선을 따라 3만여 그루가 분포돼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비로봉 서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적어놓았다.

비로봉에서 연화봉까지 능선길은 4.3㎞다. 빼어난 풍광을 만나고 헤어지며 호젓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걸었다. 군데군데 철쭉꽃이 보였다. 때를 잘못 맞춰 찾아온 등산객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몇 그루가 일찍 꽃을 피운 것 같았다. 2주 후에 다시 와서 연분홍 철쭉꽃 사이로 이 능선길을 다시 밟아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일어났다.

소백산 주능선에서 영주 쪽으로 내려다본 풍경.
소백산 주능선에서 영주 쪽으로 내려다본 풍경.

 

연화봉에 이르자 햇살이 비스듬해졌고 사람들도 다 내려간 듯 조용했다. 해맞이 명소인 전망대에는 태양 조형물과 안내판을 만들어놓았다. 영주시가 멀리 내려다보였다. 뒤돌아보면 서쪽으로 소백산 천문대가 자리잡고 있다. 서둘러 희방사 방향으로 가파른 하산길을 내려왔다. 희방사,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제2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소백산희방폭포
희방폭포.



아침에 세워둔 차를 타고 비로사 주차장으로 갔다. 풍기읍으로 내려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깨달았다. 능선길을 걸을 때 문득 떠올랐던, 6월 초에 다시 찾아올까 하는 생각은 아직 연화봉 부근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그 생각은 다음날 아침 햇살에 이슬처럼 증발해 버릴 것이라는 것을. 기대했던 연분홍 화원은 만나지 못했지만, 하늘과 바람과 신록이 어우러진 산행은 흡족했기 때문이었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당체나무 고운 꽃,/어느덧 다 져가네./어찌 그대 생각 않으리오만/집이 멀리 있네’라는 시에 대해 공자님이 한 말씀하신다. “생각이 모자라는 것이다. 무릇 사모한다면 어찌 멀다 하겠느냐?”

나도 친구도 철쭉을 사모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는 풍기IC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갔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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