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연대 이끈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 별세
개발연대 이끈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 별세
  • 채영택
  • 승인 2019.05.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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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개발연대를 이끈 주역의 한 사람으로 한국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의 효시인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1960~70년대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담당하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를 가리켜 ‘오 국보’라고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황해도 출신인 그는 경성공업전문학교 화학공업과(서울대 화공과 전신)를 졸업하고 공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 공장장에 이어 국산자동차주식회사 공장장으로 근무하며 산업현장을 누볐다.

1961년 5·16 직후 기술인재를 찾던 게 계기가 돼 국가재건최고회의 조사과장을 맡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공직에 입문, 상공부 공업1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1971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오 전 수석은 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는 제2경제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경제발전의 중심을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건의해 한국 경제의 틀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오 전 수석은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 선언에 맞춰 중화학공업 기획단장을 겸임했다. 창원을 비롯해 울산 온산 구미 여수 등 전국 산업기지 조성을 지휘했으며, 1973년 오일쇼크 때는 중동진출을 기획했다. 방위산업육성에도 앞장섰던 고인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진행된 핵연료 국산화사업의 책임자로도 지목된다.

1980년 신군부 집권이후 공직에서 물러난 뒤 12년간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1990년대 들어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 한국형 경제정책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이후 7권짜리 대작 ‘한국형 경제건설’과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등의 책을 펴내고 박정희 일대기를 정리하는데 여생을 보냈다. 생전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기술 강국만이 살 길”임을 강조했다.

2009년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영문 자서전 ‘더 코리아 스토리’를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의 발전경험을 배우려는 개발도상국 지도자와 공무원 사이에 필독서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 1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경기도 가평군 선영. 유족으로는 아들 오범규 명지대 교수와 딸 오인경 전 포스코 상무가 있다. 02-2258-5940.

채영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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