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강제로 설치? 수술실에?
수술실 CCTV 강제로 설치? 수술실에?
  • 승인 2019.06.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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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대구시의사회정보통신이사
마크원외과 원장
최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의료사고 인과관계 규명에 필요한 정보를 환자나 보호자가 수집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면 수술실 CCTV 설치와 녹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법안이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국회에 상정된 것은 최근 있었던 대리수술 사건 등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하여 일부 정치권이 성급하게 반응한 결과다. 극히 예외적인 일탈을 마치 전 의료기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왜곡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지만 이번 건에 대한 외과계 의사들의 반응은 분노가 아니라 ‘걱정과 불안’이다.

첫째, 수술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된다. 일부 환자 단체는 ‘직장인, 판검사 등 다른 분야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별문제가 없는데 유독 의사만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과 수술은 몇 밀리미터의 거리 차이, 영점 몇 초 단위의 시간차이에 의해 수술 예후가 큰 폭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전혀 다른 형태의 업무 환경과 비교하는 것은 비전문가들이 쉽게 저지르는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외과 의사들이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 보다는 ‘잘못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수술에 임한다면 집중력 저하로 인한 실기(失機)의 확률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수술실의 분위기가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변질되면서 ‘치료 예후’는 점점 더 나빠지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둘째, 환자와 주치의간에 상호 신뢰가 무너질까 걱정된다.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만큼이나, 의사가 환자에게 느끼는 신뢰감은 진료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사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환경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지 않는 환자와 비교했을 때, 수술실 CCTV 촬영을 요구하는 환자들에게 의료진이 호의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법안은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차별의 빌미를 우리 모두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셋째, CCTV가 진작부터 가지고 있는 보안상의 허점이 초래할 비극이 걱정된다.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수술에 관여하는 의료진만 치료 목적으로 환자의 민감한 신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CCTV가 설치될 경우 운영자, 기술자, 수리기사 등 기기와 영상물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고 이들을 통해 영상물이 일단 한번 유출되면 절대로 되돌릴 수없는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그나마 이런 경우에는 유출자를 특정할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구글(google) 검색창에 ‘ip camera korea’라고 쳐보시라. 많은 CCTV 영상 관련 웹 사이트들에서 주차장, 학원 내부, 도로 등 수많은 우리나라 CCTV 화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다. 국내 CCTV를 어디선가 ‘무작위’로 해킹한 결과로 의심되는 사례다. CCTV 보안 문제는 이미 국제적인 문제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화웨이(華爲) 다음의 제재 대상으로 중국 CCTV 업체 ‘하이크(HIK)’를 노리는 이유가 HIK를 비롯한 중국산 CCTV에서 백도어가 수차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뒷문’이라는 뜻의 백도어는 ‘사용자 몰래 기기에 심어진 불법 시스템 변경 코드’를 일컫는다. 백도어를 이용하면 마음대로 비밀번호를 바꾸거나 정보를 빼오고, 심지어 원격 기기조작까지 가능해진다. 국내에도 백도어 보안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CCTV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국산의 10분에 1에 불과한 중국산 CCTV의 압도적인 가격경쟁력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 제품 사용이 의무화된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기업들마저 저렴한 중국산 부품을 사들여 상표만 바꿔 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전국 어디서든 잠재적인 백도어 유입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인터넷 영상 유출은 특별한 범죄 목적 없이 단순 호기심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잖아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수술실 CCTV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 될 가능성은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법안은 1차 발의 당시 공동 발의한 일부 의원들이 법안 재검토 결과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공동발의를 철회하는 바람에 법안 상정이 1차 무산되었으나, 이후 또 다른 공동발의를 통해 재상정된 것이다. 공동발의 철회 이유에 대한 고찰보다는 철회한 의원에 대한 공격과 몇몇 시민단체의 주장만 앞세우는 일부 언론의 선동성 보도 행태가 재발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정당한 논의 절차를 건너뛰고 논란을 부추겨 국회의원에게 압력을 가하는 행태는 입법권에 대한 월권이다. 이성과 논리보다 감성파가 득세하는 최근 정치권 분위기 때문에 누군가의 가장 내밀한 정보가 인터넷 곳곳에 떠도는 암울한 미래가 펼쳐질까 매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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