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국회의 책임은 누구
식물국회의 책임은 누구
  • 승인 2019.06.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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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행정학 박사
객원논설위원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극한 대치에 따라 국회가 장기간 공전되자, 원내교섭단체인 여야 3당 원내 지도부가 2일 국회에서 계류 중인 시급한 각종 민생법안과 6조7천억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등을 위한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였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국회법에는‘2월, 4월 및 6월 1일과 8월 16일에 임시회를 집회한다’고 되어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오랜 경험상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제정한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실망을 넘어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들게 한다.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최악의 식물국회로 전락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4월 말 자유한국당의 극렬한 저지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및 야3당이 선거제도 개편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한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극단적인 대치 때문이다. 여기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막말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6월 국회 또한 개원전망이 밝지 않아 국민들을 답답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각 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가 공전되어도 국정(國政)이 돌아가니 국회 무용론까지 등장하겠는가?

금년 들어 현재까지 두 차례(3월·4월)의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각종 인사청문회와 소위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문제로 인해 어떤 진전도 없는 개점휴업상태로 끝을 맺었고, 법안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3회에 불과하였다. 5월 들어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되면서 소위 교섭단체 원내대표 호프회동을 통해 국회 정상화의 해법이 보이는 듯 했으나, 이 역시 민주당과 한국당의 신경전 속에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였다. 여야가 국회 정상화 합의에 또다시 실패한 채‘남 탓 공방’을 이어가기 때문에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민생법안 처리 시점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에 한국당을 제외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민생 법안 처리를 위해 한국당을 제외하고서라도 하루 빨리 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에서는 제1야당인 한국당을 배제한 채 국회를 소집하기에는 역풍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고, 바른미래당 역시 개원은 교섭 단체 간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민주당에서 한국당을 제외하고 국회를 개원하겠다는 것은 단지 한국당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치권을 향해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아 국민들의 걱정이 크다 빨리 국회를 열어 활발하게 대책을 논의해주시고, 특히 추경을 신속하게 심사해줄 것을 당부 드린다”고 밝힘에 따라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국회 정상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고, 한국당 또한 국회 공전상태가 지속되면 이에 따른 책임을 묻는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조그마한 명분만 주어지면 국회정상화에 합의할 가능성은 매우 큰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2일 원내 교섭단체 3당의 국회정상화 협의에서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의 조건으로 선거제·사법제도 개편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강행 과정에서 빚어진 여야 충돌과 관련하여 민주당에 선제적인 사과 및 관련 고소·고발 취하를 요구하였고,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지정과 관련하여서는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의 합의 정신과 폭력 사태를 부른 한국당에 대해 우리가 먼저 사과하거나 고소를 취하하는 것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고 맞섰지만 바른미래당의 중재로 어느 정도 합의점이 도출되는 듯 했으나, 합의문 문구에서 이견(異見)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즉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법안에 대해 한국당은 ‘합의 처리’를 민주당은 ‘합의 노력’을 고수하면서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민생을 외면한 채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여당에게 조금 더 책임이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대승적이고 전향적인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흔히 정치는 명분 싸움이라고 한다. 이 땅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 구축이라는 큰 목표 때문에 소위 보수진영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몽니를 부리고 있는 북한 정권을 너그럽게 인내하면서 달래듯이, 정부와 함께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책무를 지닌 민주당으로서는 시급한 경제 난국을 타개하고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한국당이 국회로 들어올 수 있는 명분을 줄 수밖에 없고 또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여당의 올바른 자세이다. 그리고 작금의 한국당 행태가 옳고 그른지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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