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 (濯纓濯足)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 (濯纓濯足)
  • 승인 2019.06.06 2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전 중리초등 교장
맑은 물이 흐르는 섬진강가 동산정이(동산리) 마을에 갔다. 이 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백년이 훨씬 넘은 보호수 팽나무와 느티나무들이 즐비하고, 섬진강가의 주변 바위들이 아름다워 영화 ‘낚시터’ 촬영지이기도 하다. 마을 뒷산에 동산정(東山亭)과 강변에 동월정(東月亭)의 정자도 있었다.

그곳 강가를 거닐다가 절벽의 멋진 바위 군락을 발견하였다. 조금 먼 곳인데도 ‘탁영탁족(濯纓濯足)’이라는 글씨가 바위 절벽에 크게 새겨진 것이 보였다.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뜻이다. 가까이 가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창명대(敞明臺)’라는 글씨가 보였다. ‘창명대(敞明臺)’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밝은 터’라는 뜻이다.

옆쪽 다른 바위에는 ‘관수유술(觀水有術)’이라는 글도 새겨져 있었다. ‘물을 바라보는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반드시 작은 물결과 큰 물결의 파란(波瀾)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바위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글자의 모양이나 마모 정도를 보아 세월이 꽤나 오래된 듯하였다.

분명 이곳은 옛날에 풍류를 즐기던 ‘창명대(敞明臺)’였을 것이다. 시끄러운 세상을 등지고,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하게 삶을 살아갔을 시인묵객들의 자취 흔적이리라. 마음의 여유를 즐겼을 시인묵객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위쪽을 쳐다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어 놓은 나무난간이 있는데 그냥 섬진강만 바라보도록 널찍하게 되어 있었다. 나무난간 아래에 있는 ‘창명대’에 대한 안내 표지 하나 없어 아쉽기만 하였다. 외지인들에겐 생소한 장소인 만큼 설명이 필수적일 듯싶다.

‘탁영탁족(濯纓濯足)’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는 ‘어질지 못한 사람(不人者)을 간곡하게 말로 타일러 착한 데로 따라 갈 수 있도록 하겠는가? 어질지 못한 사람은 위태로운 것을 보면 편안한 것만 생각하고, 재앙이 될까봐 이로운 것만 추구하고, 몸을 망치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하고 즐거운 것만 찾는다. 만약 어질지 못한 사람들에게 바른 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도 그들은 나라를 잃고 집안을 망치게 된다. 왜 그럴까? 어떤 어린아이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濯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濯足)」하였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함은 물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업신여긴 후에 남들에게서 업신여김을 받고, 집안도 스스로 망친 이후에 남이 와서 짓밟아 망치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내분이 일어난 후에 다른 나라가 공격하여 망하게 된다. 옛말에 「하늘이 지은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탁영탁족(濯纓濯族)을 두고 한 말이다’고 말했다.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물이 맑거나 흐린 것은 물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원통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어질지 못한 사람을 불인자(不仁者)라 했다. 불인자는 자포자기(自暴自棄)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자포자(自暴者)는 스스로 자기를 해치는 사람이다. 그와는 함께 이야기할 것이 못된다. 입을 벌리면 예의를 비방한다. 그리고 자기자(自棄者)는 스스로 무능하다고 여겨 실천을 게을리 하는 사람이다. 그와는 함께 일할 것이 못된다. 어짊과 옳음을 따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해치고 버리는 것이 바로 자포자기이다.

중국 초나라의 굴원은 충신이었다. 굴원은 임금님의 미움을 받았다. ‘모든 사람은 취해 있는데, 나만 혼자 깨어 있으니 힘들다’며 멱라수에서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때 어부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될 텐데”하고 굴원에게 중얼거렸다. 그저 초탈하게 살아가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굴원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자살하였다.

반면 세상의 어떤 다사다난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유자적 순리 따라 살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섬진강물을 바라보며 ‘탁영탁족(濯纓濯足)’을 되새겨보았다.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 것은 모두 물이 자초한 것이리라.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